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政敵)이자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47)가 수감 중 사망했다.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 교도소 당국은 16일(현지시간) 나발니가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 지역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IK-3(제3교도소)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발니가 산책 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의식을 잃었다"며 의료진이 응급조치했지만 나발니의 사망을 확인했으며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나발니는 러시아 고위층 비리 의혹을 폭로해 오다 2020년 러시아 국내 비행기 안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20일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그가 냉전 시대 소련이 사용했던 신경작용제 ‘노비초크’에 노출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배후에 푸틴 정권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러시아 정부는 이를 정면으로 부인한 바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치료를 받고 가까스로 회복한 나발니는 주변의 만류에도 2021년 1월 러시아로 귀국했고, 공항에서 체포됐다. 2021년 2월부터 제6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불법 금품 취득, 극단주의 활동, 사기 등 혐의로징역 19년형을 받았고,다양한 혐의가 계속 추가돼 총 3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초에는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3주 뒤인 12월25일 그가 기존에 수감돼 있던 제6교도소에서 IK-3로 이감된 사실이 확인됐다. 제6교도소는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235㎞쯤 떨어진 멜로호포에 있다. 반면 IK-3은 모스크바에서 북동쪽으로 1900㎞나 떨어진 최북단 시베리아 지역인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의 하르프에 위치해 있는데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 높다.
대부분 중범죄로 유죄 판결받은 이들이 수감돼 있으며, 겨울이면 기온이 크게 떨어져 '북극 늑대'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 때문에 나발니의 측근들은 러시아 당국이 대선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으로 꼽히는 그를 격리하기 위해 교도소 이감을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나발니는 러시아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푸틴의 최대의 정적으로 꼽혀온 인물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계 후손인 그는 1976년 모스크바 근교에서 태어났다. 러시아 민족 우호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러시아 연방정부 산하 금융대학교에서 금융 등을 전공한 뒤 미국 예일대에서 유학했다.
인권변호사이자 블로거로 활동하면서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고위인사들의 부패상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2013년에는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도 출마해 28% 가까이 득표하며 푸틴 정권을 긴장시켰다. 이후 푸틴 정권을 겨냥한 반정부 시위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며 푸틴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적으로 떠올랐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에 대해 부패 등 각종 혐의를 적용해 수사·기소·투옥하며 그의 행동을 적극 봉쇄했다. 이럴수록 그의 지명도는 더욱 높아졌다. 그는 노비초크 사건 전에도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2017년에는 괴한이 녹색 염료를 뿌리는 바람에 한쪽 눈 시력을 거의 잃었다. 2018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도전하려 했으나 과거 지방정부 고문 시절의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전력 때문에 출마를 봉쇄당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내달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대통령 선거 후보 4명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대선 후보는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러시아 자유민주당(LDPR) 소속 레오니트 슬루츠키, 새로운사람들당 소속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 러시아 공산당 소속 니콜라이 하리토노프 등 4명이다.
러시아 당국이 정부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인사들의 출마를 잇따라 봉쇄해온 만큼 푸틴 대통령의 압승이 예상된다. 최근 러시아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70% 이상이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겠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머지 군소 후보들의 경우 다반코프는 5%, 하리토노프‧슬루츠키는 각각 4%에 불과했다.
2022년 연임 규정을 철폐한 푸틴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2030년까지 권좌에 앉을 수 있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최대 정적이 옥중 의문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