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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한국 가요계의 거인


입력 2024.03.02 07:07 수정 2024.03.02 07:07        데스크 (desk@dailian.co.kr)

ⓒ데일리안 DB

나훈아가 은퇴를 시사하는 편지를 공개해서 충격을 안겼다.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합니다”라며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마지막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나훈아 올림”이라고 끝을 맺었다. 올해 치러지는 순회공연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는 발표로 해석된다.


나훈아는 과거 “프로는 돈값을 해야 한다”라며, 그래서 늘 치열하게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었다. “별(스타)은 별이어야 합니다. 별은 구름이 조금만 끼어도 안 보여야 합니다.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별은 별이 아닙니다. 별은 하늘에서 반짝반짝 스스로 빛나야 합니다”라는 말도 했었다.


관객들에게 돈값을 해주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 같은 존재로 빛나야 하는데 앞으론 그 기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 미리 은퇴를 결심했는지 모른다. 나훈아는 언제나 최고의 모습을 지키려 하는 완벽주의자였다.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엄격하다보니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은퇴를 발표한 것 같다. 언제나 최고이고자 하는 열정으로 그는 한국 가요계 정상의 자리를 오랜 세월 지켜왔다.


1947년생으로 알려졌지만 데뷔 당시 너무 어려서 나이를 네 살 정도 올린 거라고 한다. 데뷔 시점도 분명치 않다. 1965년 또는 1966년이라고 한다.


1970년대에 남진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식 팝음악의 물결이 밀려왔다. 한명숙, 패티김, 현미 등이 그런 흐름의 대표주자다. 그에 대한 응전으로 전통가요를 부흥시킨 것이 여자가수로는 이미자이고, 남자는 남진 나훈아 중에서도 특히 나훈아라고 할 수 있다. 남진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서구적인 분위기였던 데 반해 나훈아는 보다 전통적인 분위기였다.


그 당시엔 남진의 인기가 더 뜨거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훈아의 위상이 점점 더 각별해졌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훈아가 보다 전통적인 분위기의 노래를 했기 때문이다. 그가 들려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전통가요가 한국인을 울렸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이라는 가사의 ‘고향역’이나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라는 가사의 ‘머나먼 고향’ 같은 노래들이 그랬다. 고도성장이 이뤄지는 동안 거대한 이산 사태가 발생했고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한국인의 기본 정서가 됐다. 그런 그리움을 달래준 대표적인 가수가 나훈아였고 그래서 그의 노래가 명절 TV 특집쇼로 더없이 잘 어울렸던 것이다. ‘한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시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곁에 나훈아가 있었다.


나훈아는 한국적 트로트의 꺾기를 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민요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 국악의 창법을 반영해 기존부터 있었던 국악적 꺾기를 더욱 발전시켰다. 트로트를 일본노래라고 하는 시각이 있는데, 서양음악이 일본을 통해 동양화한 것은 맞지만 이렇게 국악적인 요소가 더해져 한국식으로 토착화했으니 우리식 전통가요인 것이다.


나훈아의 또 다른 위대한 점은 가창자로서 정점에 섰을 뿐만 아니라 창작자로서도 놀라운 발자취를 남겼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노래방 반주기에 수록된 곡이 가장 많은 가수가 바로 나훈아라고 한다. 200여 장의 앨범과 2,600여 곡의 취입곡이 있는데 그중에서 800곡 정도가 자작곡이라고 한다.


양적으로만 따져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인데 질적인 수준도 엄청나다. 시대를 초월하는 국민히트곡을 여럿 배출했기 때문이다. 전성기 때는 말할 것도 없고, 80년대에도 ‘여자이니까’, ‘사랑’, ‘청춘을 돌려다오’, ‘땡벌’, ‘무시로’ 등 놀라운 히트곡들을 배출했다. 뿐만 아니라 2010년대에도 ‘테스형’과 같은 신곡을 내 히트시켰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 장인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예술과 공연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커서, 과거에 삼성가의 연회 초청도 거절했다고 한다. “난 대중예술가라서 개인이 아닌 공연 티켓을 산 관객 앞에서만 노래한다”는 게 그 거절 이유였다고 한다. 그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화다.


그렇게 자부심이 큰 공연이니만큼, 자신이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만 관객 앞에 서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올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라고 알렸으니 정말 온 열정을 다 쏟아 부어 기념비적 무대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하지만 부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 또다시 에너지가 샘솟아 올 공연 이후에도 무대에 우뚝 선 가황의 모습이 보고 싶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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