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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싱 속아 계좌 대여도 배상 책임…이렇게 무섭다, 경각심 일깨워" [디케의 눈물 191]


입력 2024.03.07 05:01 수정 2024.03.07 05:01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피싱범 지시받아 가상계좌 개설 및 타행 계좌 이체…법원 "30% 배상 책임"

법조계 "가담 의도 없었고 부주의로 범행 도왔어도…미필적 고의 인정"

"전자금융거래법 개정돼 통장 대여도 처벌…'범죄 연루 몰랐다' 입증 어려워"

"주범 뿐 아니라 단순 가담자도 배상책임 인정…피싱 경각심 일깨운 판결"

ⓒgettyimagesBank

피싱범에게 속아 계좌를 빌려준 대여자라도 다른 피해자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가담 의도가 없었고 부주의로 범죄를 도왔어도 거래 내용이 비정상적이고 미필적으로 불법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주범 뿐만 아니라 단순 연루자들까지 배상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피싱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박민우 판사는 메신저 피싱범에 속아 비정상 금융거래를 한 A씨로 인해 사기를 당한 B씨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A씨가 B씨에게 210만원을 배상하라"고 최근 판결했다. 앞서 2022년 A씨는 대출을 받고자 자신을 모 저축은행 상담사로 소개한 사람과 연락했고 "대출을 받으려면 대출 상환 실적이 있어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 이에 A씨는 카드론으로 300만원을 대출받고 가상계좌를 만들어 피싱범이 지정한 은행 계좌로 송금했으며 이 금액을 입금받으면 다시 이체하는 일을 반복했다.


당시 또다른 피해자 B씨는 피싱범이 보낸 메시지를 딸이 보낸 것으로 착각해 신분증 사진을 찍어 메시지로 전송했고 이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해킹당했다. 곧이어 B씨의 은행 계좌에서 A씨의 계좌로 700만원이 이체됐고 피싱범의 지시에 의해 이 돈은 제3의 계좌로 넘어갔다. B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고 공단은 A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A씨가 비정상적인 금융거래임을 인식할 수 있음에도 계좌정보를 제공했고 피싱범에게 돈이 전달되도록 과실로 사기 범행을 방조했다고 판단했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미필적 고의'란 범죄사실의 발생 가능성을 불확실한 것으로 표상하면서 이를 용인하고 있는 경우를 말하는데 방조범의 책임을 판단할 때 정범인 피싱 조직의 구체적 범행 내용을 모두 인식할 것을 요하지 않는다"며 "재판부는 A씨 역시 속아서 계좌를 빌려주었다고 하더라도 거래내용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미필적으로나마 불법성을 인식할 수 있었으므로 고의를 인정한 것이다"고 말했다.


ⓒgettyimagesBank

이어 "속아서 보이스피싱 범행에 방조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구체적 가담의도가 없고 부주의로 범죄행위를 도왔다고 하더라도 불법성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법리를 확인한 판례이다"고 부연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민법상 배상책임은 형사상 책임과 달리 과실에 의한 책임도 인정하고 있고 최근 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르면 통장을 대여만 해도 처벌된다"며 "그동안 언론보도나 캠페인, 금융기관에서 피싱에 대한 경고 등이 꾸준히 이루어져 왔기에 통장 대여가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통장대여가 피싱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 자신이 어떠한 과실도 없었고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다"며 "주범 뿐 아니라 단순히 연루된 자들까지 배상책임을 인정함으로써 피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 판결이다"고 강조했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리더스)는 "형법에서는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해도 민법 제750조에 따라 금전적인 손해배상을 부담할 수 있다"며 "다만 이 경우에도 민법 396조 '과실상계' 조항에서는 '채권자에게 과실이 있을 때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 및 그 금액을 정함에 있어서 참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실책임의 비율은 경우에 따라 가변적이며 정해진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책임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서 과실이 더 낮은 수위로 감안 됐을 수도 있다"며 "가령, A씨가 인지능력 저하의 장애를 앓고 있어서 비정상적 거래임을 인지하지 못 했다거나, 여러 차례가 아닌 한 두 차례만 금융거래를 했다면 과실 비율이 낮아졌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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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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