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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차 무면허 운전하다 사망했지만 법원은 산재 판단…근로복지공단의 소극 행정? [디케의 눈물 219]


입력 2024.05.01 06:01 수정 2024.05.01 19:07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망인, 미개통도로 운전 중 추락해 숨져…법원 "무면허 원인 아냐, 내재한 위험 현실화"

법조계 "1종대형 면허증, 취득 조건 까다로워…法, 망인 운전실력 평균 이상으로 본 듯"

"공단, 적극적으로 사고원인 해석하지 않고 유족급여 청구 거절…소극행정 개선해야"

"사실관계과 법조항, 유기적으로 연계해 대단히 면밀하게 분석하고 판단한 판례"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gettyimagesBank

운전자가 무면허 상태였더라도 회사 업무로 차를 몰다가 사망한 경우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사고 발생 원인이 망인의 무면허 운전이 아닌 업무 자체에 내재한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기에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근로복지공단이 적극적으로 사고 원인을 해석하지 않고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소극 행정을 개선하고 업무상 재해 범위를 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박정대 부장판사)는 숨진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 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 3월 7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21년 새벽 시간대 경기 화성시 공사 현장에서 나오는 흙을 운반하기 위해 미개통된 도로를 운전하던 중 핸들을 잘못 조작해 배수지로 추락해 숨졌다. 당시 그는 1종 대형 운전면허가 있었으나 음주운전으로 취소된 상태였다.


이에 유족은 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지만, 공단은 망인이 사고 당시 무면허 상태였다는 점을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면허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망인은 이 사건 차량을 운전할 수 있는 사실상의 능력은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며 "무면허운전 행위가 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사고 현장은 미개통된 도로로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노면이 젖어 매우 미끄러웠고 조명시설 등 안전 시설물은 없었다"며 "사고가 온전히 망인의 업무상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공단이 불복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서울가정법원·서울행정법원.ⓒ연합뉴스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는 "이번 사안은 망인이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미개통도로에서 회사 업무를 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이므로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게 맞다. 망인은 1991년부터 운전을 했던 만큼 사고와 무면허운전의 인과관계는 없어 보인다"며 "법원은 무면허운전보다 도로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점이 사고의 더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망인은 음주운전으로 취소됐으나 1종 대형 운전면허를 취득한 이력이 있다. 대형면허는 취득 조건이 훨씬 까다롭고 더 많은 운전 경력을 요구한다"며 "법원은 망인의 운전실력이 평균 이상이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망인이 사망한 만큼 면허증이 객관적인 증명 자료가 됐다"고 덧붙였다.


검사 출신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사고가 발생한 장소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미개통도로였던 만큼 망인이 무면허 운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볼 수 없다"며 "당시 사고가 발생한 도로는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고 망인의 업무도중 그 위험이 현실화 된 것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큰 문제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적극적으로 사고원인을 해석하지 않고 몸사리기 식으로 유족급여 청구를 거절하는 것이다. 공단은 빌미만 보이면 유족급여 청구를 거절하니 유족은 소송을 할 수 밖에 없다"며 "최근 대법원 판례뿐만 아니라 비슷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 공단의 탁상공론적인 소극행정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이번 판결은 법원이 기계적으로 근로자의 무면허로 인해 산재를 인정하지 않은 게 아니라 사고의 원인을 면밀히 따져 판단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며 "법원에서 사실관계를 치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일부 기계적으로 법조항 적용해 불합리한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번 판결은 사실관계과 법조항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아주 면밀히 분석하고 판단한 판례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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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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