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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 필리핀·베트남이 손잡은 이유


입력 2024.10.13 07:07 수정 2024.10.13 09:13        김상도 기자 (sara0873@dailian.co.kr)

영유권 다툼 필리핀·베트남, ‘빌런’ 중국에 맞서기 위해 맞손

두 나라 정상, 올해 초 남중국해서 협력 강화 위한 협정 체결

양국 해경, 8월 초 필리핀 루손섬 마닐라만서 첫 합동 훈련

필리핀, 무자비한 베트남 어민 공격 中 겨냥해 강력히 규탄

지난 1월 30일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왼쪽) 필리핀 대통령(왼쪽)과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 앞서 취재진을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 EPA/연합뉴스

‘남중국해 앙숙’ 필리핀과 베트남이 중국에 맞서기 위해 손을 맞잡았다. 중국이 수시로 베트남의 배타적경제수역(EEZ)과 대륙붕에서 해양 측량을 하는 등 도발하고, ‘괴물’로 불리는 초대형 해경선을 남중국해에 배치해 걸핏하면 ‘영유권 침범’을 이유로 내세워 필리핀 어선을 향해 물대포를 쏘아대는 등 이들 두 나라는 ‘남중국해의 빌런‘ 중국의 괴롭힘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정부는 지난 4일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베트남 어민들을 공격해 다치게 한 사건과 관련해 중국 해상 당국이 베트남 어민들에게 저지른 폭력·불법 행위를 강하게 규탄했다고 로이터·AFP통신 등이 5일 보도했다.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베트남과 영유권 다툼을 벌이는 필리핀이 오히려 베트남을 거들고 나선 것이다.


에두아르도 아노 필리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중국의 베트남 어민 폭행에 대해 "지독한 행위"라며 "민간인을 상대로 이런 무력을 사용한 것은 국제법을 뻔뻔하게 위반하고 인간의 기본 품위를 침해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필리핀 외교부도 성명에서 이번 심각한 사건을 인지하고 있다며 "선박과 선원, 특히 어민들의 해상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의무"라고 거들었다.


앞서 지난달 29일 중국과 베트남의; 영유권 분쟁 해역인 남중국해 파라셀군도(중국명 西沙群島·베트남명 호앙사군도)에서 조업을 하던 베트남 어선 한 척이 중국 국적으로 추정되는 선박의 공격을 받아 어민 3명의 팔과 다리가 부러지는 등 10명이 부상을 당했다. 베트남 어민들은 배에 올라탄 40명이 쇠 파이프로 3시간 동안 자신들을 폭행하고 어업 장비를 빼앗아갔다고 호소했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베트남 어선이 중국 정부의 허가없이 파라셀군도에서 불법으로 어업활동을 해 관련 당국이 이를 막으려고 조치했다며 "현장 작전은 전문적이었고 절제됐으며 부상자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파라셀 군도는 1974년 중국이 남베트남군을 섬에서 몰아낸 이래로 중국이 실효지배 중이다. 베트남 정부는 이 군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8월5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필리핀 해안경비대 대원들이 필리핀과 베트남 국기를 들고 합동훈련을 위해 입항하는 베트남 해경(VCG)의 CSB 8002함을 환영하고 있다. ⓒ AP/뉴시스

필리핀과 베트남의 이같은 움직임은 양국이 올해 초 정상회담에서 체결한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협정에 대한 후속조치이기도 하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1월30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사고 예방'과 '해양경비대 협력'에 관한 2개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이 협정에는 해양경비대 간 핫라인 구축과 양국 공동문제를 논의할 해양경비대위원회 구성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정부는 성명을 통해 두 나라가이 해양문제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고 신뢰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세부적인 합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트엉 국가주석과 회담에 앞서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한 필리핀의 전략적 파트너"라며 해양 협력이 양국관계의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팜 민 찐 베트남 총리는 "세계와 지역정세가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다"며 "두 나라가 단합하고 더욱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필리핀과 베트남은 외교적으로도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유연한 자세를 견지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외교부는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어떤 사안이든 해결하기 위해 베트남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 외교부는 또 "우리는 남중국해 관련 사안에 대해 서로 혜택이 되는 해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가능한 방식으로 베트남과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 7월 베트남이 남중국해 대륙붕을 놓고 필리핀과 서로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을 해결하려고 대화할 의사를 나타낸 데 대해 화답으로 해석된다.


지난달 29일 남중국해 파라셀군도에서 조업하다가 중국 선박에 탄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 다리 등에 부상을 입은 베트남 어민이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에 도착해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다. ⓒ 연합뉴스

팜 투 항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도 필리핀이 대륙붕 경계 연장을 유엔에 신청한데 대해 "두 나라에 서로 혜택이 되는 해법을 모색하고 달성하기 위해 필리핀과 협의할 준비가 된 상태"라고 전했다.


베트남과 필리핀은 현재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두 나라가 방위·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순전히 영유권을 주장하며 남중국해에 군사시설을 설치하고 간단없이 도발을 서슴지 않는 중국에 공동으로 맞서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더군다나 베트남은 필리핀처럼 직접 해상에서 부딪히지 않지만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중국과 줄곧 설전을 벌여왔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영유권 분쟁지역인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南沙群島·베트남명 쯔엉사군도)에서는 시나브로 군사기지를 확장해 왔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알파벳 유(U)자 형태로 9개선(구단선)을 긋고 이 안의 90% 영역이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베트남 내에서는 구단선이 그려진 외국 영화나 드라마 개봉이 허용되지 않는 등 민감한 이슈로 여겨진다. 그간 중국의 남중국해 몽니에 각개전투로 대응해 왔지만 보다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두 나라가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두 나라는 해상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8월 말 판 반 장 베트남 국방장관과 길버트 테오도로 필리핀 국방장관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두 나라 간 방위협력을 강화하며 남중국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분쟁을 평화적으로 국제법에 따라 해결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필리핀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두 나라 장관은 모든 수준에서 상호 작용과 관여를 지속함으로써 방위·군사 협력을 심화하겠다고 확고히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 자료: 글로벌 시큐리티

양국 해경은 지난 8월 초 필리핀 북부 루손섬 마닐라만에서 첫 합동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번 훈련 역시 올해 초 마르코스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당시 두 나라가이 맺은 ‘남중국해 사고 예방’과 ‘해양경비대 협력’에 관한 2개 MOU에 따른 것이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베트남 해경의 2400t급 CSB 8002함이 베트남 중부 꽝남성 키하항에서 합동훈련 참가를 위해 필리핀을 향해 출발했다. 이후 CSB 8002함은 필리핀 해경선박과 함께 수색·구조훈련, 화재예방 훈련 등 해상안전 중심의 훈련을 실시했다. 베트남 해경들은 마닐라에서 스포츠 교류, 문화재 방문 등의 친선우호 행사도 열었다.


베트남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합동 훈련이 포괄적 협력을 증진하고 해상에서 법집행 능력을 개선하며 관련 해역과 이 지역에서 평화·안정·안보·안전 유지에 기여하는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2010년대 들어 남중국해에 구단선을 긋고 그 안의 거의 대부분을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5년 전후로 남중국해 스프래틀리군도와 파라셀군도의 섬, 암초, 모래톱에 활주로, 격납고, 미사일기지, 레이더 등을 설치하며 노골적으로 군사기지화했다.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상설재판소(PCA)는 2016년 중국의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중국이 이를 무시하고 영유권을 계속 고집하면서 필리핀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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