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나의 독재자’ 독자들 지적에 등급 변경
여성혐오적 내용으로 비판 받은 공모전 참여작 등
논란 끊이지 않는 웹소설·웹툰 수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공주가 전 약혼자의 학대에서 벗어나고, 동생의 미래를 지켜주기 위해 독재자의 손을 잡는 내용의 웹소설 ‘상냥한 나의 독재자’에게는 지난달 연재 시작 당시, 15세 이용가로 공개됐으나, 지금은 청소년 이용 불가로 등급이 변경됐다.
주인공이 전 약혼자에게 학대당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부분도 문제였지만, 고문에 가까운 성적 학대 장면이 담겨 “상식 이하의 설정”, “보기 괴롭다”라는 반응을 유발한 것이다. 해당 표현에 대해 “청소년 이용 불가라도 불쾌하다”라고 반응하는 독자도 없지 않지만, 뒤늦게 나마 ‘청소년’의 접근은 막는 ‘최소한의 장치’가 뒤늦게나마 이뤄진 것이다.
웹소설뿐 아니라 웹툰에게도 적용되는 이런 ‘최소한의 장치’는 네이버웹툰, 카카오페이지 등의 플랫폼에서 수년간 꾸준히 진행했다. 당초 웹툰과 웹소설은 전체 이용가와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으로만 나눴으나, 지난 2019년부터 ‘전체 이용가·12세 이상·15세 이상·18세 이상’ 등 4단계로 등급을 디테일하게 분류 중이다. 그러나 처음 정한 등급을 전개 도중 변경할 만큼 부족한 객관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진들에 의해 딸을 잃은 재벌 회장이 복수를 위해 사이코패스 탈북소녀를 입양하는 내용의 네이버웹툰 ‘놀이감’도 등급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현재 15세 이용가로 공개 중이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평을 받으며 우려를 자아내는 중이다. 복수의 쾌감을 강조하거나, 또는 색다른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 웹툰, 웹소설의 ‘인기 요인’인데, 이 과정에서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내용 및 장면으로 불쾌감을 유발하는 사례가 속출 중이다.
선정성뿐만 아니다. 혐오 표현도 지적 사항이다. 플랫폼들이 혐오 표현을 거르지 않고 독자들에게 그대로 노출할 뿐 아니라, 공식 수상전에서 인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네이버웹툰의 2024 지상최대공모전에서 ‘이세계 퐁퐁남’이라는 아마추어 웹툰이 공모전 1차 심사를 통과했는데, 이때 연애 경험이 많은 여성과 결혼한 경제력 있고 순진한 남성을 조롱하는 의미가 담긴 ‘퐁퐁남’이 소재로 활용된 것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물론 공모전 출품 작품 속 한 표현까지 네이버웹툰 측이 제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란 반응도 없지 않다. 다만 이 논란과 맞물려 과거 네이버웹툰 작품 속 ‘여성혐오적 표현’들이 다시금 화제가 되며 논란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웹툰 ‘퀘스트지상주의’에서는 불법인 성인만화 사이트 ‘히토미’가 그대로 언급이 돼 지적을 받고 ‘라노벨’로 수정된 바 있으며, 웹툰 ‘프리드로우’에서는 성희롱 장면이 등장, 불필요하게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앞서 언급된 작품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최근 5년간 선정성과 폭력성이 짙은 웹툰에 대해 수천 건에 달하는 소비자 민원이 쏟아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최근 5년간 웹툰 민원 신고 접수 현황’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2024년 8월까지 5년간 총 1028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전체 민원 중 절반 이상이 선정성(545건)에 집중됐고, 뒤를 이어 차별·비하 민원이 374건, 폭력·잔혹·혐오 관련 민원이 109건을 기록했다.
실상 웹툰과 웹소설의 선정성, 폭력성, 혐오 내용에 관련된 지적은 ‘해묵은’ 문제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0년 기안84가 연재 중이던 ‘복학왕’이 웹툰 내에서 여성, 장애인을 비하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여자 주인공 봉지은이 기안그룹에 인턴으로 입사한 뒤 정직원으로 채용되는 장면이 그려졌는데, 이때 봉지은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학벌, 스펙, 노력, 그런 레벨의 것이 아닌”이라면서 회식 자리에서 조개를 배 위에 얹고 깨부수는 장면이 담긴 것. 이를 본 노총각 팀장은 봉지은을 정직원으로 채용하는 전개가 이어져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문제들이 반복되고 있다.
다양한 해법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그중 제대로 된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방심위는 인터넷상에 유포되는 불법·유해 정보에 대해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위반 여부를 심의할 뿐, 웹툰 등 개별 콘텐츠에 대한 심의 기준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웹툰자율규제위원회에 민원을 이첩하고 자율규제를 맡기고 있는데, 해당 위원회에서도 검토 결과를 협약사에 전달하는 ‘권고’ 조치만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