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뭔일easy] '제주항공 참사'인가 '무안공항 참사'인가


입력 2025.01.06 12:15 수정 2025.01.06 12:16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정치 성향에 따라 "제주항공 참사" vs "무안공항 참사" 주장

지역명, 기업명 숨기기는 독자 속이는 기만행위

지나친 불안감‧기피현상은 없어야겠지만, 독자가 판단할 몫



산업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혹은 필연적으로 등장한 이슈의 전후사정을 살펴봅니다. 특정 산업 분야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나 소액주주, 혹은 산업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데일리안 산업부 기자들이 대신 공부해 쉽게 풀어드립니다.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앞에 마련된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에 나선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포지티브적 해석 : 지역명 가려주기는 근거 없는 지역 비하를 막기 위한 배려.

#네거티브적 해석 : 대구시민, 제주도민에 대한 배려는 왜 없을까.


지난 연말 전라남도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착륙사고로 지금까지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사와 관련한 언론 보도도 수없이 쏟아집니다. 사고 원인이 규명되는 시점까지 감안하면 앞으로도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씩 이 참사가 수시로 언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관련 기사들을 보면 여지없이 이런 댓글들이 붙습니다. “왜 제주항공 참사냐, 무안공항에서 일어난 일이니 무안공항 참사다”, “왜 무안공항 참사냐, 제주항공이 일으킨 일이니 제주항공 참사다.”


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여지없이 등장하는 극단적 정치 성향을 가진 이들 간의 싸움입니다.


극단적 진보층은 사고 명칭에서 ‘무안’을 뺄 것을 주장합니다. 무안이 진보 성향이 강한 호남권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극단적 보수층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무안과 호남권에 대한 지역비하발언을 쏟아낸 데 따른 반발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극단적 보수층은 딱히 제주항공을 편 들 이유가 없을 텐데도 굳이 제주항공을 빼고 무안을 강조해야 한다는 걸 보면 지역비하 의도가 뻔해 보입니다.


아마 이 사고가 대구공항 같은 영남권 공항에서 발생했더라면, 두 진영은 서로 자리를 바꿔 싸웠을 겁니다.


사실, 이 사고와 관련해 이름 불리기 싫어하는 건 제주항공과 무안공항 측이 편향적 정치관을 지닌 두 세력보다 더 심할 겁니다. 비록 말은 않지만 속내는 자신들보다 상대 쪽이 더 부각되길 바라겠죠. ‘제주항공 참사’가 주로 언급된다면 여행객들은 제주항공 이용을 꺼릴 것이고. ‘무안 참사’가 주로 언급된다면 무안공항으로의 발길이 끊길 우려가 크니 말입니다.


2024년 12월 31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경찰 등이 사고 조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데일리안은 사고 발생 초기부터 관련기사 제목에 [제주항공 무안참사]라는 ‘문패’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패는 언론사에서 동일 사안 관련기사들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식인데요, 이게 길어지면 기자들은 상당히 짜증이 납니다. 제목 글자 수는 한정이 돼 있는데 문패가 다 잡아먹어 버리면 정작 본문의 핵심을 보여주는 단어를 넣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죠.


두 명칭 사용에 거부감을 가진 양쪽 진영의 존재와 기자들의 짜증에도 불구하고 데일리안 편집국이 굳이 둘 다 문패에 때려 넣은 것은,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언론사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참사에 어떤 이름이 붙느냐에 따라 특정 항공사, 혹은 특정 공항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이 조성돼 기피현상이 발생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건 독자들이 판단할 몫입니다.


2013년 아시아나항공 샌프란시스코 착륙사고나 다른 해외 사례를 되짚어 보면 항공기 착륙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의 주체로 여러 요인들이 거론됩니다.


항공기 자체의 결함(제조사 과실)일 수도 있고, 정비나 운항 과정에서의 문제(항공사 과실)일 수도 있고, 공항 시설이나 관제(공항 과실)일 수도 있습니다. 기상 상태나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와 같은 불가피한 자연재해도 원인이 될 수 있죠.


이번 제주항공 무안 참사의 경우, 착륙 당시 새 떼가 날아들어 충돌하며 한쪽 엔진이 파손된 게 1차 원인이었고, 어떤 이유에선지 랜딩기어(착륙장치)가 내려오지 못하면서 동체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영상을 보면 조종사는 비교적 안정적인 자세로 항공기를 활주로에 안착시키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랜딩기어의 부재와 짧은 종단 안전구역, 로컬라이저(LLZ)가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의 존재로 인해 기체가 폭발하며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조류 충돌 예방 대책은 적절했는지, 3중 제어가 가능한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은 게 정비 책임은 아닌지, 로컬라이저 지지대를 콘크리트로 만들어 놓은 것은 적절했는지 등 명확한 사고 책임 규명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2024년 12월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와의 충돌 여파로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사고 책임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한 위험성이 부각되며 항공사나 공항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론사가 그들의 피해를 우려해 사고 관련 기사 제목에서 인위적으로 어느 한 쪽을 숨기거나 어느 한 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철새 도래지 4곳으로 둘러싸여 버드 스트라이크 위험이 높은데다, 비상착륙시 위험을 초래할 구조물이 있는 공항을 이용하고 싶은 승객은 없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기체 결함 가능성이 있는 항공기를 운항하거나 정비 매뉴얼이 철저하지 않은 항공사를 선호하는 이도 없을 겁니다.


비록 해당 사안들이 지금 단계에서는 ‘의혹’에 불과할지라도, 잠재적인 항공여객인 국민들은 그런 의혹을 받는 주체가 ‘제주항공’과 ‘무안공항’임을 명확히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공항의 소재지가 ‘무안’이라고 해서 해당 지역과 인근 지역을 근거 없이 비하하는 일도 없어야겠지만, 그 지역 이미지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무작정 숨겨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제주항공에 지역명이 따라붙은 제주도민들은 무슨 죄입니까. 과거 대구 지하철 참사, 이태원 참사도 모두 지역명이 붙었습니다.


아마 이 기사를 보고도 왜 ‘무안공항’이나 ‘제주항공’을 숨기지 않았냐며 험한 소리를 하실 분들이 계실 텐데요. 죄송합니다. 무시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1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 feriferi 2025.01.06  01:07
    무안공항 참사
    0
    0
1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