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초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파묘'의 흥행 이후 국내 콘텐츠 시장 전반에 오컬트 바람이 불고 있다. 영화 뿐 아니라 드라마, 애니메이션, 예능까지 다양한 장르에 오컬트 요소가 가미된 작품들이 등장하며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방영 중인 SBS '귀궁'은 16일 두 자릿수의 시청률을 기록 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소설 원작의 애니메이션 '퇴마록' 또한 호평 속에 50만 관객을 돌파, 후속작 제작 소식까지 전했다. 시청자들의 오컬트, 호러 에피소드를 전하는 MBC '심야괴담회' 시즌 5까지 방영을 하고 있고, 무속과 연애를 접목한 SBS '신들린 연애'는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4월 막을 내렸다. 이처럼 오컬트는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콘텐츠 업계에서 '믿고 쓰는' 키워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는 장르적 특성과 시대적 분위기가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경제 위기와 취업난이 지속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관객은 이해 가능한 공포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한 영화 관계자는 "안전이 보장된 곳에서 공포를 체험하는 것에 대한 쾌감이 있다"며 "비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오히려 안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맞서 싸우는 구조가 관객에게 '통제 가능한 위기'를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오컬트 콘텐츠가 미감 있는 비주얼과 감각적인 연출로 마케팅에 나서면서 장르에 대한 접근성도 한층 낮아졌다. 그 결과 4월 오픈한 '퇴마록'의 공식 굿즈 펀딩은 하루 만에 누적 4억 6700만 원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외에도 '귀궁', '검은 수녀들'은 섬세한 미술 연출은 강조하며 작품을 홍보했다.
이외에도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등의 관찰 예능을 통해 오컬트 콘텐츠를 소비하는 연예인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방송에 노출되며 모방 소비를 시도하는 이들 또한 등장했다.
오컬트 장르의 확장은 곧 세부 장르의 분화로도 이어졌다. 공포와 코미디를 결합한 '핸섬가이즈', 오컬트와 액션을 버무린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퇴마 판타지에 로맨스를 더한 '견우와 선녀' 등이 대표적이다. 단일 장르를 넘어 다양한 서브 장르를 품는 그릇 역할로 도약하는 흐름이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오컬트라는 키워드에만 기댄 콘텐츠는 오히려 실패로 돌아간다. '제 8일의 밤'과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흥행 참패를 기록했고, '거룩한 밤' 역시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 잡지 못한 채 혹평을 받았다. 완성도를 놓친 작품은 짧은 화제성만 남긴 셈이다.
그런 만큼 오컬트 장르의 생존은 얼마나 세련된 방식으로 공포를 해석하고 시청자에게 감각적으로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공포의 언어는 시대와 함께 진화한다. 지금의 '오컬트 열풍'이 또 하나의 유행으로 끝날지, 새로운 장르 체계를 구축하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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