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클래스·EQS·마이바흐 등 최고급 라인업 수작업 맞춤 제작
장인 250명 손끝에서 차량 완성…하루 최대 20대 개별 생산
도어핸들 추가·반려견을 위한 설계 조정 등 고객 요청 적극 반영
가죽들이 행거에 정갈하게 줄지어 걸려있다. 벽면에는 색상, 질감, 두께별로 분류된 가죽 샘플이 배열돼 있어 손으로 직접 만져보며 고를 수 있도록 돼 있다. 그 앞 작업대에서는 장인들이 초크를 손에 쥔 채 가죽의 표면을 세심하게 살핀다. 미세한 흠집이 있는 부분은 재단에서 제외하기 위해 선을 그어 표시한다. 재봉틀이 일정한 리듬으로 돌아가며 공간을 채우는 이곳은 언뜻 보면 명품 의류 브랜드의 수작업 공방 같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직접 찾은 독일 진델핑겐 ‘마누팍투어(MANUFAKTUR) 스튜디오’는 지난해 말 메르세데스-벤츠가 공식 오픈한 맞춤 제작 공간이다. 흔히 떠올리는 자동차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나 로봇 팔은 어디에도 없다. 이곳에선 오직 장인의 손끝으로, 단 하나뿐인 자동차가 만들어진다.
“한 사람을 위한 한 대의 차, 벤츠 마누팍투어”
자동차가 아닌 패션을 떠올리게 하는 이 공간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S클래스, EQS, 마이바흐, AMG 등 벤츠의 최고급 라인업의 디자인 옵션들이다.
마누팍투어 스튜디오는 벤츠의 최고급 차량에 적용되는 직물 안감, 인테리어 피팅, 특수 도장 등 고객 맞춤형 커스터마이징을 실현하는 핵심 현장이다. 이곳은 겉으로 보기엔 재봉틀과 가죽 샘플이 빼곡히 놓인 고전적 공방처럼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고도로 디지털화된 생산 시스템이 정교하게 작동하는 이중적 공간이다.
핵심은 사람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약 250명의 전문가는 모두 3년간의 엄격한 견습 과정과 6개월의 전문 교육을 이수한 장인들이다. 작업자들의 작업복 가슴팍에는 자수로 각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름 석 자를 직접 달고 일하는 이들에게서 직업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이들은 가죽 재단과 자수, 정밀 재봉과 조립까지 전 공정을 수작업으로 수행하며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한 감각이 요구되는 작업을 반복해낸다. 하지만 이 전통적 수공예 위에 최첨단 생산 기술이 덧입혀져 있다. 공정 전반은 벤츠의 디지털 운영 시스템인 MO360을 통해 실시간으로 추적되며 가죽의 등급 판정부터 재단 효율, 각 파트의 작업 이력까지 모두 디지털로 관리된다. 이런 수작업과 자동화 작업을 통해 하루 최대 20대의 차량을 개별화할 수 있다.
실제로 이날 현장에서는 한 장인이 레이저 조명 아래에서 소가죽을 세밀하게 검수하고 있었다. 작업자가 천에 초크로 하자를 표시하면 그 정보가 작업대 옆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반영됐다. 이후 워터젯 커터로 정밀하게 재단되고 이때 남은 자투리 가죽은 버려지지 않고 리셀러에게 재판매된다.
가죽은 A부터 C까지 등급이 나뉘는데 단 한 개의 찍힘도 허용되지 않는다. 찍힘이 있는 C등급은 아예 사용하지 않고 A등급은 시트나 헤드라이너 등 상부에, B등급은 하부나 플로어 매트에 사용된다. 이처럼 용도에 따라 두께도 0.3mm부터 1.2mm까지 구분해 사용된다.
이곳은 자동화나 대량생산과는 정반대의 세계다. 기계가 아닌 손이 중심이며, 효율보다 완성도를 우선시한다. 루프라이너를 마감재로 덮는 재봉틀 작업에는 한 장인당 평균 30~40분이 소요된다. 또한 모든 공정은 ‘디테일의 미학’에 기반한다. 엠보싱은 70도의 열로 정밀하게 눌러 찍으며, 특수 도어실이나 센터 콘솔, 스티어링 휠에도 원하는 문구나 로고를 새길 수 있다.
이곳에서 제작되는 차량은 모두 사전 주문을 기반으로 시작된다. 고객은 단순히 사양을 선택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 철학까지 반영된 차량을 직접 구성한다.
벤츠 마누팍투어 관계자는 “실제로 차량에서 보다 쉽게 하차할 수 있도록 도어핸들을 하나 더 달아달라는 요청이나, 반려견이 창밖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커스터마이징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며 “우리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제 차량에 반영한다”고 말했다.
마누팍투어의 특징 중 하나는 고객이 직접 제작 현장을 견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누팍투어 관계자는 “작업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차량 제작에 임하고 있는지를 고객에게 직접 보여드림으로써 브랜드와 장인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것 또한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마누팍투어의 진가는 특별 에디션 차량에서 극대화된다. 벤츠는 최근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전설적인 선수 이상혁(페이커)을 위해 SL63 AMG를 단 한 대만 제작해 전달했다. 차량의 헤드레스트에는 페이커의 서명이 새겨졌고 플로어 매트에는 ‘Hall of Legends’ 문구가 각인됐다. 이 차량 역시 마누팍투어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이 같은 고도화된 개인 맞춤 시스템은 실제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벤츠 글로벌 시장에서 주문된 최고급 세그먼트 차량의 40% 이상이, 최소 하나 이상의 마누팍투어 커스터마이징 옵션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의 감성과 정체성이 담긴 차를 원하는 수요가, 고급차 시장에서도 분명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마누팍투어는 센터 오브 엑설런스(Center of Excellence)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고객은 센터 오브 엑설런스에서 차량의 외장 색상과 실내 구성을 상담하며 기본 설계를 마친다. 이곳은 상담 공간이자 실물 확인을 위한 쇼룸 역할도 겸한다. 다양한 색상 샘플이 벽에 진열돼 있고 실제 차량 외장을 햇빛과 다양한 조명 아래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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