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시네마'의 영화적인 순간들 [공간을 기억하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6.20 14:00  수정 2025.06.20 14:00

[작은영화관 탐방기㉓] 라이카 시네마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라이카 시네마 제공
상영 그 이상의 경험을 설계하다


서울 연희동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독립예술영화관 라이카 시네마는 2021년 1월 13일, 팬데믹 시기에 문을 열었다. 모두가 문을 닫던 시기, 이 극장은 오히려 상영을 시작했다. 공사를 미리 마친 상태에서 더는 미룰 수 없었고, “몇 명이라도 관객이 찾아온다면 열어야 한다”는 선택이었다.


문유정 이사는 라이카 시네마를 단순한 상영 공간이 아닌, 관객이 ‘영화적인 순간’을 체험하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 건물 역시 기존 공간에 입주하는 방식이 아닌, 처음부터 영화관을 짓기 위해 땅을 매입하고 설계한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개관한 만큼, 팬데믹을 겪으며 체감한 변화의 폭이 일반 예술영화관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거리두기 조치가 가장 엄격했던 시기에 문을 열었던 터라, 초반 운영은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상영 회차나 좌석 수, 영업시간 모두 제약을 받았던 시기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극장은 운영 방식 자체가 크게 달라졌다.


"다른 예술영화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전히 코로나 이전만큼 회복이 안 됐다고들 하시는데, 저희는 애초에 코로나 한복판에서 절반 좌석만 열고 시작했거든요.

그때는 저녁 9시까지만 운영할 수 있어서 하루에 4회차밖에 못 돌렸고, 좌석도 19석만 쓸 수 있었어요. 지금은 40석 전부 다 열고 하루 7회차씩 운영하니까, 차원이 아예 다르죠. 거의 10배 가까이 되는 변화예요. 1년 가까이 전 좌석을 한 번도 제대로 열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단순히 코로나 전과 후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저희는 정말 극한 조건에서 시작했던 거죠."


라이카 시네마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한 영화 상영에 그치지 않고, 공간 전체가 '영화적 경험'으로 확장된다는 데 있다. 상영관 입구와 복도, 극장에 오르기까지의 동선, 루프탑까지 모두 일관된 콘셉트로 구성돼 있어, 관객이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를 하나의 장면처럼 체감하게 만든다. 이처럼 공간의 분위기와 감각을 통해 영화와 현실 사이의 감정적 연결을 유도하는 설계가 특징이다.


"멀티플렉스 같은 곳보다는 확실히, 이 공간 전체를 하나의 경험처럼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상영관 앞 복도나 계단 올라오는 길 자체가 우주적으로 꾸며져 있어서, 영화랑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거든요. 딱 영화 끝나고 극장 문을 열고 나갔을 때, 허름한 풍경이 펼쳐지는 것보다는 계속해서 영화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는 공간에 있는 게 관객 입장에서도 기분이 다르게 다가올 거라고 생각해요."


라이카 시네마의 주 관객층은 20대 초반의 대학생 여성들이 중심을 이룬다.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홍익대 등 주요 대학이 인근에 밀집해 있는 입지적 특성 덕분이다. 물론 작품에 따라 남성 관객 비중이 높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젊은 층, 특히 대학생 관객의 유입이 꾸준하다.


이러한 관객 구성에 맞춰 라이카 시네마는 '시네필'보다는 영화에 익숙해지고 있는 '입문자'를 염두에 두고 큐레이션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큐레이션, 프로그래밍은 모두 제가 맡고 있어요. 저희 극장을 찾는 분들은 완전히 마니아층이라기보단 영화에 갓 입문하신 관객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너무 어렵고 딥한 예술영화보다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나 입소문을 타고 있는 영화를 중심으로 선보이려고 해요. 또 저희는 '괴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같은 작품을 1년 가까이 틀기도 했어요. '해피엔드'도 지금 두 달 가까이 상영 중인데, 여전히 관객분들이 찾아오세요. 아무리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일반 관객들이 작품을 인지하고 찾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많이 찾아주시는 작품의 상영 기간을 길게 가져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국엔 좀 더 많은 분들이 영화를 편안하게 경험하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어려운 예술영화'보다는 좀 더 친숙하고 접근하기 쉬운 작품 위주로, 최대한 대중적인 큐레이션을 지향하고 있어요."


ⓒ라이카 시네마 제공
극장의 존재감, 관객이 선택한 '장소의 힘'


라이카 시네마는 공간 자체가 영화적 감각을 자극하는 구조로 설계된 만큼, 특정 감성의 작품과 유독 조화를 이룰 때가 있다. 특히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처럼 일상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한 영화는 이 극장에서 특별한 반응을 얻는다.


연희동이라는 장소 자체가 갖는 조용하고 정돈된 주택가의 분위기, 그리고 골목길을 따라 이어지는 일상적인 풍경들이 영화의 서사와 자연스럽게 맞닿으며 관객에게 더욱 깊은 몰입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퍼펙트 데이즈'가 일상의 소소한 경험을 다루잖아요. 그런데 연희동이라는 공간 자체도 좀 그렇거든요. 그래서 굳이 이 동네까지 와서 이 영화를 보려는 분들이 많았어요. 멀티플렉스보다는 저희 같은 예술영화관에서 더 잘 맞았던 이유가, 영화적 경험과 실제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예술영화 OTT 플랫폼 '콜렉티오'를 운영하는 배급사 M&M 인터내셔널과 협업해, 콜렉티오 단독 상영작을 개봉 전 오프라인에서 먼저 만나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콜렉티오 공개 전 한 달간 저희 극장에서만 먼저 상영하는 구조예요. '운디네'부터 시작해서, M&M 인터내셔널의 색감과 저희가 잘 맞더라고요."


라이카 시네마를 찾는 관객에게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문 이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화 봤다는 것보다 '나 라이카 시네마 가봤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전시 보는 갤러리처럼요. 세련된 이미지, 감각적인 경험이 유지되길 바라고, 그 안에서 오래 함께해주는 관객이 많아지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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