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사람과 문화의 문제"
처벌·규제 등 제도로는 역부족
당국 차원의 지원 뒷받침 돼야
국내 은행권에서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은행권이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목소리는 높였음에도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왜 사고를 막지 못하는지, 제도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본지는 4회에 걸쳐 은행 내부통제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책무구조도 안착을 가로막는 걸림돌과 미래의 내부통제 방향과 과제를 들여다본다. 제도가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전문가 의견과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책무구조도 도입, 인공지능(AI) 감사 시스템 고도화 등 연이은 금융사고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분주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러한 시스템 강화만으로는 원천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우려가 크다.
제도 보완과 더불어 건강한 조직문화를 위한 당국 차원의 지원이 없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책무구조도'와 AI, 만능열쇠 아냐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 등 6개 은행이 올해 들어 공시한 금융사고만 총 17건으로 집계됐다.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라 은행에서 10억원 이상의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15일 이내에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시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금융사고 청정구역으로 여겨지던 인터넷은행에서도 첫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토스뱅크의 회사 재무 관련 팀장이 지난 5월 30일부터 이달 13일까지 법인계좌에 있던 27억8599억원 규모의 자금을 본인 계좌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업계에서는 올해부터 적용되는 책무구조도 적용 1호 대상이 누가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고 발생 시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임원들이 져야하는 책임을 명시하는 제도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 경영진의 경각심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올해부터 발생한 금융사고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아직까지 '1호 적용' 대상이 나오지 않았지만,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실효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인의 일탈이나 몇명의 조직원들이 작정하고 저지르는 범죄까지 임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복합적인 업무 과정을 통해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결국 다수 임원들이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결국 책임 회피를 위한 또 다른 형식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얘기다.
AI를 활용한 내부통제 시스템 역시 원천적인 사고 방지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직원의 이상 거래나 비정상적 패턴을 24시간 감시해 사고를 예방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이 만큼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드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나 개인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전문가는 "모든 금융사고가 사람에 의해서 발생하는 만큼, 규제와 감시 차원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은 윤리의식"…바뀌지 않는 문화가 문제
국내 은행장들은 올 들어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윤리경영'과 '조직문화 쇄신'을 빼놓지 않고 강조했다. 기술과 제도로 통제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모습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27일 '우리은행 2024 ESG 보고서'를 발간하며 '지배구조' 개선사항을 강조했다. 직업윤리와 준법정신을 중시하는 조직문화가 내재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고객 신뢰 회복을 올해 경영의 우선 목표로 세운 바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도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자, 이러한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 실적 위주의 과도한 성과주의 문화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관행 등 조직 분위기가 변하지 않는 이상 윤리의식이 뿌리내리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직원 윤리 뿌리내릴 당국 지원 절실…예방에 초점 맞춰야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문가들은 직원 윤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당국 차원의 지원도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외부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은행 노력만으로 대대적인 변화를 이끌기 부족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책임자에 대한 엄정 처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처벌은 사후제재 차원이다보니, 사전 예방을 위한 또다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사고는 개인의 일탈인 동시에 성과 지상주의가 낳은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며 "당국 역시 처벌 위주의 감독에서 벗어나, 은행들이 건강한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실질적인 윤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유도하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은행 스스로도 자정 노력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할 때"라면서도 "사고가 터질 때마다 시스템을 탓하고 몇몇 직원을 일벌백계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도로 완벽하게 방지하겠다는 전략보다,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조직 전반에 퍼져야 한다"며 "당국과 은행이 윤리경영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이를 조직문화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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