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숲으로…직접 경험하고, 함께 나누는 ‘호수책장’ [공간을 기억하다]

[책방지기의 이야기㉖] 서울 강서구 생태서점 호수책장

서점에서 책 읽고, 숲에 나가 직접 경험하는 숲탐험대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 조용한 내발산동의 편안한 서점, 아이들 방문 부르는 호수책장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호수책장은 자연·환경·생태를 주제로 한 책을 선보이는 생태서점이다.

김자호 책방지기가 그림책 편집자로 일하며 꿈꿔 온 ‘서점 운영’에 대한 로망과 아이를 숲 유치원에 보내며 사랑하게 된 ‘자연’을 자연스럽게 결합한 공간이다. 아이들의 등교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지는 학교 앞, 작지만 친근한 이 공간이 마음에 쏙 들었던 김 책방지기는 2020년, 코로나19 리스크도 감수하고 좋은 것들을 나누기 위해 서점 운영에 뛰어들었다.

서점 이름은 서점 앞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이름을 따 지었다. ‘필요한’ 책들로 채워진 자신의 책장과 달리, ‘좋아하는’ 것들로만 꽉 채운 아들 호수의 책장처럼 서점을 운영하고 싶었던 김 책방지기의 바람이 호수책장에 고스란히 담겼다.

숲 유치원에 다니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 하나까지 관찰하는 호수의 경험과 이를 계기로 숲해설가 자격증까지 획득한 김 책방지기의 경험이 만나 콘셉트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김 책방지기는 “코로나19 전에는 아이들과 어디 놀러라도 나가려면 미세먼지 지수를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놀면서 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지 않나”라며 “또 숲 안의 공기는 바깥과 다르다. 이곳에서 쉬다가 지루해지면 숲으로 나가기도 한다”라고 호수책장의 일상들을 설명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자유롭게’ 책을 즐기는 이 방식은 곧 호수책장만의 색깔이기도 하다. 김 책방지기는 하교 후, 또는 방학 때 서점을 찾아 ‘편안하게’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의자도, 탁자도 ‘정해진’ 자리에 두지 않았다. 매번 다른 행사들이 열리는 만큼, 의자나 탁자는 접었다 폈다 하며 유연하게 운영 중이고, 책을 읽을 때도 돌아다니며 ‘나만의 방식’대로 독서를 할 수 있다. ‘책을 읽다가 지루해지면 누워서 읽어도 된다’고 말한 김 책방지기는 “지금은 좀 커서 서점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친구도 지나가다가 인사를 하곤 한다”며 호수책방만의 ‘친근한’ 분위기를 언급했다.

◆ 서점에서 외부로…넓어질 호수책장 친구들

‘생태서점’의 정체성은 확고하다. 서점에서는 각종 식물·곤충 등 자연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위해 ‘정보’를 담은 도감부터 ‘기후위기’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그림책·동시 등 생태 환경, 환경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는 ‘다양한’ 도서들을 선보인다.

소리 내 책을 읽는 ‘완독클럽’과 숲을 찾아 공부하고, 또 즐기는 ‘숲탐험대’ 등 자연 관련 활동을 통해 바깥으로 호수책장의 공간적 의미를 확장하기도 한다. 주로 초등학생 아이들이 모이는 모임들로, 숲 탐험을 떠나기 전 호수책장의 책을 읽으며 미리 공부하기도 하는 등 이곳의 아이들은 놀이와 공부 사이, 즐겁게 자연과 환경에 대해 배우고 있다.

아이들도 즐겁게 모임을 찾고 있다. 두 모임에 대해 김 책방지기는 “완독클럽의 방식도 정해져 있지 않다. 생일 순서대로 돌아가며 읽기도 하고, ‘함께’ 읽는다는 것 외에는 정해진 게 없다. 어떤 친구는 따옴표 속 말을 실감 나게 읽으며 친구들을 웃기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걸 따라 하며 즐기기도 한다. 학년 별로 그룹이 나뉘는데, 그룹별로 또 학년별로 다채롭게 모임들을 즐긴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활동들을 통해 아이들의 관심사가 뚜렷하고, 또 깊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어 감사했다. “지금 같은 나이의 여자 아이들로만 구성된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에선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여성주의에 대한 책을 읽기도 한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르나 관심사가 뚜렷해진다”고 예를 든 김 책방지기는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다음 책이 정해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기도 한다. 그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반갑게 찾아 읽는 재미도 있다”라고 호수책장 아이들이 더해가는 ‘깊이’를 언급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숲을 탐구하며 새에 관심이 생긴 한 친구를 언급하기도 했다. 김 책방지기는 “지금은 나보다 새에 대해 더 잘 안다. 새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을 공부하기도 하고, 먼 곳으로 탐조를 나가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기도 한다. 그 친구가 찍은 사진을 수업에 활용한 적도 있다. 지나가다 들러 새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고 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숲 탐험을 계기로 곤충을 키우는 친구부터 죽은 사슴벌레를 묻지 못해 서점에 보관 중인 친구까지. 내발산동 호수책장은 아이들의 아지트 역할까지 톡톡히 하며 ‘없어서는 안 될’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공유하며 만나게 되는 ‘친구들’도 호수책장만의 강점이 되고 있다.

숲 외의 공간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이미 서점과 숲을 넘어 주변 학원과 도서관, 청년 센터에서도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 있다. 서점 옆 피아노 학원과는 아이들이 직접 쓴 동시에 음을 붙여 노래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고, 도서관과 센터에는 강의 등을 통해 서점 바깥에서 호수책장이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 중이다.

김 책방지기는 호수책장의 ‘다음’에 대해 “서점이라는 공간이 계속 사라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점의 역할을 이어나가는 곳도 많다. 지금은 ‘밖으로’ 나가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프로그램도 꼭 이 공간 안에서만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숲탐험대처럼 완독 클럽도 책을 아예 들고나가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외부 수업도 많이 시도 중인데, 외부에 나가서 내가 만나는 친구들은 다 우리 책방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는 걸 좀 시도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