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보다 월세로 대응하는 임차인들
사회 경제적 영향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으로 접근한 제도
시장 메커니즘 형성되면, 월세로 내모는 세입자 줄어
우리나라의 주택 임대차 시장은 이제 전세 시장에서 월세 중심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세 제도가 발달한 이유는 고도성장기에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면서 전세가 임대인이나 임차인에게 모두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임대인의 입장에서는 전세금이라는 거액을 무이자로 활용할 수 있었고,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매월 월세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전세금을 기반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주거사다리 역할을 담당하던 전세 제도가 저성장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2025년 현재 전국 임대차 거래에서 전세와 월세의 비중은 약 39대 61 정도이고, 서울의 경우에는 월세의 비중이 63.9%이다. 2020년에 70.5%였던 전세의 비중을 고려하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일부 정책담당자는 전세 제도가 수명을 다했다면서 이를 폐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랜 기간 동안 관습적으로 사용되었고, 존재하는 제도를 갑자기 폐지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이 제도의 효용가치가 사라졌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전세 제도를 활성화하는 정책은 시행하지는 않더라도 사인 간의 거래라는 점을 고려하여 그 방법이나 정도 면에서 지나치지 않도록 정책을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전세의 월세화는 정책의 잘못으로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7월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시행된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2025년 7월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서울보증보험(SGI)의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100%에서 90%로 줄인 정책, 6.27대출규제정책 등 여러 정책들이 오히려 시장을 왜곡하여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이는 그 제도가 가지는 사회 경제적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으로 접근하여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법과 정책으로 모든 것을 규제하겠다는 방식 접근보다는 투명성을 강화함으로써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임차인의 보호가 요구되는 사항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화시킨 것은 전세 사기 사건이다. 전세 제도를 이용하여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이 낮은 주택을 대상으로 이른바 갭투자가 가능해지고, 자기 자본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주택을 대거 매수한 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면서 보증금을 수취하고 이를 돌려주지 못하는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임차인들이 전세금보다는 월세로 대응해 나타난 현상이다.
이러한 월세 수요의 증가는 월세 가격의 상승을 가져오는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임차인을 보호하고자 정부가 추진하였던 전세 대출 확대, 청년층에 대한 대출 지원, HUG 전세보증가입요건완화, 다주택자 규제, 전월세 상한제 등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주택임대차시장이 월세 시장(엄격하게 표현하면 반전세 혹은 보증부월세)로 변화하게 되면 가장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주거취약계층이다. 왜냐하면 월세의 부담으로 주거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형 아파트나 비아파트에도 일부 저렴한 전세 물량이 공급되어 1인가구나 저소득층들이 전세를 주거사다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전세시장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전세 제도는 기본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때 반환 리스크가 발생한다. 부동산의 가격이 상승할 때에는 나타나지 않는 리스크이다. 축소 시대이기 때문에 전세 보증금 반환에 따른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물론 축소의 시대에 전세 제도를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도 시장 친화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첫째, 전세가 격을 안정시키는 방법이다. 전세 가격의 안정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전세 공급을 늘려야 한다. 1가구 1주택정책의 완화를 통하여 아파트 전세의 공급을 늘리고, 비아파트에 대한 공급유인 정책을 통하여 공급도 함께 늘리는 방안이다.
수요를 초과한 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지면 전세가격의 안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월세로 전환되는 수요를 줄여 월세의 비중을 감소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둘째, 민간임대주택제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민간임대주택에 대해서는 세금, 자금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일정한 소득 이하의 임차인에게만 임대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하여 월세 수요를 줄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전세의 월세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전세가 격을 안정시켜야 하며, 주택매매가격에 대비한 전세 가격의 비율인 전세가율을 낮추어 전세 사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이러한 시장의 메커니즘이 형성되면 자연적으로 전세를 선호하게 되고, 월세로 내몰리는 세입자가 줄어들 것이다.
글/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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