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내년도 정부 예산안 확정
해수부, 총예산 대비 1% 수준 그대로
조선·해양 플랜트도 물 건너가는 듯
돈·권한 없이 몸만 강제 이주 가능성
어떤 사업을 하려면 자본이 필요하다. 하던 일을 늘리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돈은 필수다. 개인이 하는 작은 장사이건 정부가 하는 큰 사업이건 마찬가지다.
어떤 일을 하려면 권한도 필요하다. 민간이 사업을 하려면 허가를 받아 권한을 얻어야 하고, 정부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업을 하려면 그만한 권능(權能)이 주어져야 가능하다.
해양수산부는 이재명 정부 들어 ‘북극항로 시대 준비’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정부는 북극항로가 잠재성장률 0%대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새로운 먹거리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이라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새로운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 당장 850명, 추가 1000명 이상 인력을 부산으로 ‘강제 이주’하기로 했다. 쫓겨가는 당사자들은 물론 주변에서도 맹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설득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반대를 뒤로하고 북극항로라는 새로운 시대를 부산에서 준비하기로 한 해수부다. 문제는 앞으로 과연 그에 맞는 예산과 권능이 주어지느냐다.
2025년도 해수부 전체 예산은 6조7816억원이다. 지난해 대비 1.4%(937억원) 늘었다. 국가 전체 예산 673조3000억원과 비교하면 1% 수준이다. 북극항로를 준비할 내년(2026년) 예산은 과연 어떨까?
조만간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취재 결과 내년도 해수부 예산안 2000억원 안팎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발표 전이라 정확한 수치는 확인할 수 없으나 대충 그 수준인 건 분명하다.
늘어난 금액 비율(인상률)만 보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이다. 깐깐한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해수부가 얼마나 열심히 설득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추측건대 ‘북극항로 시대’를 앞세워 예산 증액 필요성을 강변했을 것이다.
해수부의 예산 확보 노력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다만 과연 이 정도 예산으로 북극항로 시대를 준비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이다.
인상률이 전년보다 두 배 늘었다고는 하지만 금액으로는 고작 2000억원 정도다. ‘확장 재정’ 기조 이재명 정부에서 2000억원 늘어난 것이 과연 많이 늘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늘어난 2000억원을 오롯이 북극항로 사업에만 투입할 것도 아니다.
전체 예산안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증가율로 봐도 다른 부처와 비교해 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 예산 전체 평균 증가율보다 오히려 낮을 수도 있다. 금액으로는 비교할 수준도 아닐 게 분명하다.
예산만 문제가 아니다. 전재수 해수부 장관은 북극항로 시대 개척과 함께 해수부 권한 강화를 주장했다. 다른 부분들은 논외로 두더라도 최소한 ‘조선·해양 플랜트’ 관련 기능은 해수부가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역시 아무런 얘기가 없다.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마련한 정부 조직 개편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데 감감무소식이다. 부처 내부에서는 ‘물 건너가는 거 아닌가’라는 판단이 늘고 있다.
지금 해수부 예산과 권한 그대로 부산으로 옮겨간다면 ‘북극항로 시대’ 대비라는 말은 거짓이다. 부산에서도 돈과 장비는 있어야 일을 한다.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다면 부산으로 갈 이유도 없다.
정부가 진정으로 북극항로 시대 개척 의지가 있고, 그 최적의 장소가 부산이라고 판단했다면 그만한 예산과 인력, 권한을 함께 부여해야 한다. 이런 것도 없이 북극항로를 운운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부산 이전까지 약 4개월 남았다. 지켜보는 눈이 많다. 그 눈빛에는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우려를 기대로 돌릴 수단은 ‘돈’과 ‘권한’이다. 돈(예산)은 국회, 권한은 대통령 몫으로 남았다. 이제 결과를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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