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이 먼저냐 노동이 먼저냐” [기자수첩-정책경제]

김성웅 기자 (woong@dailian.co.kr)

입력 2025.09.04 07:00  수정 2025.09.05 05:52

고용노동부 약칭 ‘고용부’→‘노동부’ 변경

김영훈 장관, 노동계 편향 정책 논란

“좋은 일자리 ‘노동’과 연결될 때 의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위 글은 우선순위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두 가지 대상을 비유하는 문장이다. 이 오래된 철학적 명제가 다시금 떠오르게 된 계기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부처 약칭을 ‘고용부’에서 ‘노동부’로 바꾸면서다.


김 장관은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고용노동부의 약칭을 ‘노동부’로 공식화 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노동부의 명칭을 고용노동부로 바꾸고, 약칭을 고용부로 한 이후 15년 만의 변경이다.


김 장관은 약칭 변경 이유에 대해 “고용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노동’의 가치와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각에선 바뀐 약칭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유치한 짓이라고 주장한다. 약칭이 바뀌어도 고용노동부가 하는 일은 이전과 같고, 무엇보다 전체 이름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말자는 목소리다. 모두 맞는 얘기다.


그러나 김 장관이 취임 후 추진하는 일련의 정책들이 ‘노동계 편향적’이라는 논란이 계속되는 현 시점에서 부처 약칭 변경은 논란에 기름을 끼얹을 수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정부 메시지, 기업 고용에 지대한 영향력 행사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효력 발생을 앞두고 있다. 정년연장,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도 빠르게 추진 중이다.


언급한 것은 모두 노동계에서 환영하는 정책·입법이다. 고용과 산업, 경제 전반을 고려해야 할 부처가 노동자 이익에만 귀 기울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절벽, 유례없이 증가한 ‘쉬었음’ 청년 수, 고령자의 대규모 은퇴 행렬 등 복합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보내는 메시지는 기업들의 고용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고용노동부는 노사관계를 중재하고 이들간 균형추를 맞춰야 하는 책무를 가진 부처다. 기업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정당한 권익이 보장돼야 한다. 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좋은 일자리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때 만들어진다. 과도한 규제나 부담으로 기업 경영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고용 축소로 연결될 수 있다. 반대로 노동자의 권익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면 우수한 인재 확보가 어려워져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노사 균형 추 잃으면 ‘노동부 간판’ 갈등 상징된다


노동자를 위한 정책과 기업을 위한 정책을 따로 두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면서도 기업이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규제는 합리적 수준에서 운영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고용과 노동을 함께 아우르는 고용노동부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약칭 변경 자체는 작은 변화일 수 있어도, 이것이 주는 정책 신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한쪽 진영의 요구를 우선시하는 듯한 정책 행보가 이어진다면 ‘노동부’라는 간판은 자칫 논쟁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 고용과 노동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의 약칭이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국민 누구에게나 설득력을 주는 정책으로 뒷받침되는가 하는 점이다.


노사가 균형을 잃는다면 이번 약칭 변경이 갈등의 불씨에 기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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