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보상 제시돼야 협상동력 만들 수 있어"
정치적 합의 필요…신뢰 구축 꾸준 이어가야
'페이스메이커' 역할…비핵화, 사실상 사어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4일 오후 서울 웨스틴조선서울에서 2025 INSS NK포럼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전 총장, 문정인 연세대 석좌교수, 김기정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국내 통일·외교·안보 분야 원로와 전문가들이 이재명 정부의 북핵 동결·감축·비핵화에 대해 단계적 해법을 제시하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제언을 내놨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4일 오후 서울 웨스틴조선서울에서 2025 INSS NK포럼을 주최하고 1세션 '이재명 정부 대북정책 과제와 평가 -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했다.
1세션은 양무진 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사회를 맡았으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문정인 연세대 석좌교수, 김기정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등이 참석해 새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 과제와 실행 여건을 점검했다.
먼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임했다면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동결→감축→비핵화의 단계적 해법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미국이 준비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공개된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 인터뷰에서 북핵 정책과 관련해 "1단계는 핵과 미사일에 대한 동결, 2단계는 축소, 3단계는 비핵화"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완전히 경색돼 서울에서 평양으로 가는 길이 물리적으로도 끊겼다"며 "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 간 대화를 추진하도록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추동했다"면서 의미 있는 구상이라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현재로선 전면적인 비핵화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북핵 동결에 대한 실질적 보상, 감축에 따른 반대급부가 분명히 제시된다면 협상 동력을 만들 수 있다고 밝다.
이어 "북한이 시진핑 주석의 행사에 초청받았지만 이는 중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른 보조 수단(역할)"에 불과하다며, 경제난에 직면한 북한으로선 결국 미국과의 대화를 통한 제재 완화 외에는 출구가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북 간 신뢰 부족으로 정상회담이 성사되긴 쉽지 않겠지만,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준비해 미국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며 "임기 중반쯤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문정인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은 평화 우선주의와 실용주의적 접근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국내 정치적 합의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문 교수는 "이 대통령의 강점은 싸울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는 김대중 대통령 이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핵심 기조와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통한 평화 공존의 제도화로 목표를 낮췄다"며 한반도 평화의 '페이스메이커'를 자임한 것도 미국이 주도하는 평화 프로세스에서 보조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비핵화 접근 방식에 대해서도 "완전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다 알고 있다"면서 "이 대통령이 제시한 동결→감축→폐기의 3단계 접근은 미국 내에서도 우호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북한은 이미 '허망한 꿈'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며 "향후 협상 동력 확보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14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 단행한 대북 긴장완화 조치를 평가 절하하고 '허망한 꿈'이라고 언급하며 적대적 태도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북중러 공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있으며, 글로벌 사우스나 브릭스(BRICS) 같은 외교 공간 확대도 모색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북미 협상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 교수는 "단기적으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이재명 정부가 자발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조치를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정 전 원장은 최근 북·중·러 3국 협력 움직임과 관련해 과잉 대응이나 진영화된 해석은 오히려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김 전 원장은 "북한이 외교적 자신감을 회복한 것 같고 지금은 오버 리액션할 단계가 결코 아니다"라며 "(북중러) 3자 연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가 향후 전략적 관찰 (포인트)"라고 밝혔다.
그는 이재명 정부의 대외 전략과 관련해 최근 한미·한일 정상회담에서 한국을 '평화의 페이스메이커'로 규정한 것은 "성공적인 아젠다 세팅"이라며 "페이스메이커 전략은 앞에 서되 우승하려는 욕심은 버리고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비핵화라는 용어는 사실상 사어(死語)가 됐다"며 "동결-통제-군축의 3단계 접근이 북한을 설득하기 용이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과정은 단순히 핵을 줄이는 게 아니라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정치적 과정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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