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지속된 '내란 청산' 아젠다
내년 3월쯤 '내란 재판' 사실상 마무리
정치권, '내란 프레임' 지속불가능 지적
李, 3일 '미래지향적' 메시지 주목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사태가 곧 1주년을 앞두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에 핵심 근간일 정도로 영향을 미친 만큼, 정부 역시 이른바 '내란 잔재 청산'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다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이 내년 초 선고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내란 청산' 아젠다가 지속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 동력으로 삼을 새로운 아젠다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오는 3일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특별 담화를 발표한다. 대통령실은 "총부리에 맞선 함성으로 극도의 혼란을 평화로 바꾼 대한민국 국민의 노고를 기억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담화 발표 이후 외신 기자 80여명을 초청한 기자회견도 진행된다. '새롭게 선 민주주의 그 1년'이라는 주제로 이뤄지며, 국제 사회에 K-민주주의 회복과 국민 통합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이번 담화와 외신 기자회견은 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향후 어떤 입장을 취할지 판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진영 갈등이 깊어진 상황에서 미래 지향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분수령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3일 진행되는 이 대통령과 5부 요인과의 오찬에 대해 "앞으로 내란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지에 대한 얘기를 나눌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 재판의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하고 내년 1월 9일 마지막 재판을 열겠다는 방침이다. 이르면 내년 2월 중순쯤 판결 선고가 나올 전망이다.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경우 1월 21일에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예측된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조지호 경찰청장 등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사건도 윤 전 대통령 사건과 병합돼 함께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 재판 병합이 이뤄지지 않는 변수를 제외하면 내년 3월쯤 사실상 큰 줄기의 내란 문제는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헌법존중정부혁신 TF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정부는 12·3 비상계엄에 참여·협조했는지 조사하기 위해 출범시킨 '헌법존중 정부혁신 총괄 태스크포스(TF)'의 활동 기간을 2월로 설정했다. 공직사회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도지만, 예기치 않게 윤 전 대통령 판결 선고 시점과 맞아떨어진다. 헌법존중 TF는 야권으로부터 '공무원 감찰' '공직사회 불신 촉발' 등 비판받고 있지만, 김민석 국무총리는 "내란의 심판과 정리에는 어떤 타협·지연도 있어선 안 된다"며 강행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신속하고 확실하게 내란을 정리하고 성장과 도약으로 나아가라는 국민의 명령도 다시 무겁게 새겨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내란 정리에 대해 여러 차례 '신속성'을 당부하고 있다. 이는 전 중앙행정기관을 대상으로 대규모 조사를 장기화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정부의 핵심 아젠다를 내란보다 '성장·도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12·3 비상계엄은 이재명 정부 출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단순히 계엄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 심판론'이 우세한 상황에서 조기 대선이 열렸다는 점뿐 아니라, 이 대통령의 출마 명분은 물론 초반 정부 아젠다의 핵심 요소였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5개월여 동안 계엄으로 인한 내부 혼란과 대외적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총력을 쏟았고, 실제 국제 사회에서 민주주의 회복력을 인정 받는 상황이다.
문제는 계엄 사태 이후 1년 동안 내란 관련 재판은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계엄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고조되면서 관계는 계엄 사태 이전보다 더욱 경색된 상황이다. 정부 역시도 이 대통령의 외교전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 이외에 국정 과제 추진은 더디기만 하다.
특히 조직 개편은 사실상 마무리된 상황이지만, 4년 연임제 및 결선투표제 도입 등 권력구조 개편 내용이 담긴 1호 과제인 '개헌'은 공론화 과정도 거쳐지지 않고 있다. 당시 국정기획위원회는 오는 2026년 지방선거 또는 2028년 총선에서 찬반투표를 함께 실시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정치권에선 이번 지선에서 개헌이 이뤄지기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한다.
정치권에선 비상계엄 사태가 이재명 정부의 사실상 국정 동력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정권 내내 유지되긴 어려운 아젠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 등 내란 혐의 재판에 현재 국민의 이목이 쏠려있지만, 고환율·고물가 등 경제 위기 신호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내란 재판이 마무리될 경우, '경제 위기'는 수면 위로 올라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과제이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내란 혐의 재판이 마무리되면, 이제 대내외적인 통상과 환율·물가 등 경제적인 문제가 중요 의제가 될 수 있다"며 "지방선거 전후로 개헌과 지방 분권 등 중요 과제가 남은 상황에서 정부여당은 충분히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30일 국회에서 당무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향후 계엄 사태에 대한 정부와 여당 간 간극은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는 성장과 도약을 위해선 내란을 신속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지방선거를 앞둔 더불어민주당은 '심판론'을 앞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위한 필요 절차를 진행하고, 추가 특검 구성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지방선거 직전까지 '내란 아젠다'를 끌고 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30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3대 특검 종료 후 미진한 부분에 대한 추가 수사 필요성을 요구하는 국민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등을 통해 필요한 절차를 신속 진행하고, 수사가 미진한 부분에 대한 추가 특검 구성도 당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그동안 여당의 독주에 정부 성과가 여러 차례 묻힌 대통령실 입장에선 내년에도 계엄 프레임이 지속되는 것이 달갑지는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더욱이 국민의힘 내에서 '계엄 반성론'을 두고 이견이 노출되는 상황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 일부에선 "불법 계엄을 반성해야 한다"(양향자 최고위원) "지방선거를 앞두고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해야 한다"(엄태영 의원) 등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현재로선 큰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장이지만, 지선을 앞두고 당이 태도를 전환할 경우 여당의 '내란 프레임'은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계엄 사태 이후 현재까지 윤 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면서도 "민주당이 정당 해산을 단순히 정치적 언사가 아니라 실제 법제화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는데, 통합진보당 사태와는 다르기 때문에 자칫 지선을 앞두고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오는 3일 발표할 특별 담화에서 정부의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역대 대부분의 정권은 전임 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해 '청산' 아젠다를 내세웠지만, 초반 국민적 호응을 끈 이후 오히려 반발 요소로 작용했다. 이른바 '지난 정권 탓'이 책임 회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언제까지 과거 청산만 하다가 정권을 보낼 수는 없다"며 "윤석열 정부도 지난 정권 탓만 하다가 국민적 호응을 받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야당 공세를 멈추진 않겠지만 일단 국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여당이 '내란'에 대해 지방선거 나아가 총선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라며 "국민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란에 대해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며, 특히 총선 시점이 되면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분위기가 달라질 시기이기 때문에 국정을 잘 운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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