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관장, 1심 불복하며 그동안 숨겨왔던 비자금 증거 제출
2심 승소했지만, 노태우 비자금 논란 확산
시민단체 고발에 이어 국회는 환수법 추진, 법 통과 땐 재산분할금도 몰수 대상
대법원이 오는 18일 전원합의체 회의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 소송 건을 논의한다. 이날 회의에서 결론을 내리고 선고기일을 지정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재계와 법조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유재산 법리 재확인한 1심
이번 소송은 1심과 2심 판결 결과가 크게 엇갈리며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22년 12월 1심 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노 관장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의 절반을 요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은 부친인 고(故)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유재산에 해당하므로, 노 관장의 기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민법은 부부 일방이 상속이나 증여로 취득한 재산을 특유재산으로 규정하고,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실제로 과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 간 이혼소송에서도 유사한 판단이 내려진 바 있다. 당시 임 전 고문은 이 사장이 보유한 주식의 50%를 요구했지만, 법원은 해당 주식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증여 받은 자금으로 인수한 것으로 보고, 임 전 고문의 청구를 기각했다.
노 관장, 김옥숙 메모로 판세 전환 시도
다급해진 노 관장은 항소심에서 변호인단을 전원 교체하며 소송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특유재산 법리를 깨기 위해 1심에서 제출하지 않았던 모친 김옥숙 여사의 자필 메모와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새롭게 법원에 제출했다. 노 관장은 재판 과정에서 부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최종현 회장에게 전달됐고, 이에 대한 담보로 선경건설 명의 어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자금이 SK 성장의 종잣돈이 된 만큼 SK 주식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관장은 청구액을 1조원에서 2조원으로 확대했고, 인지세만 43억원에 달했다. 결과는 노 관장의 압승이었다. 지난해 5월 서울고등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보다 20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었다. 최 회장 측은 "비자금을 받은 사실이 없고, 300억원 어음은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활동비를 지원하기 위해 건넨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악수(惡手)가 된 비자금 카드, 환수 여론 확산
노 관장은 법정에서 승소했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노태우 비자금'이 다시 세간에 회자되면서 "뇌물 300억원이 46배로 불어나 2세, 3세로 대물림되는 판결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여론도 급속도로 악화됐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3% 이상이 노태우 비자금 원금과 수익을 모두 몰수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불법 증여', '비자금 국고 환수' 주장이 이어졌고,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까지 나서 "반헌법적 국가폭력범죄를 통한 범죄수익에는 시효를 배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감사에서는 김옥숙 여사가 210억원 규모의 보험에 가입하고, 노재헌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공익법인에 152억원을 출연한 사실 등이 드러나며 비자금 은닉 의혹이 불거졌다. 시민단체의 검찰, 국세청 고발도 잇따랐다.
독립몰수제 도입되면 재산분할금 전부 환수 가능
입법부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자금 환수를 위한 법안들이 연이어 발의됐다.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독립몰수제 법안을 발의하고 '국가폭력범죄를 통한 범죄수익 비자금 환수 토론회'를 열어 올해 안에 법안 통과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한 법무부 소속 검사는 해당 법안이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자 법무부장관의 핵심 추진과제라며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독립몰수제는 범죄자의 사망이나 공소시효 만료 여부와 관계없이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제도로, 미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노 관장은 거액의 재산분할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환수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종 심판대 오른 '뇌물 46배 대물림'
18일 열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의에서도 노 관장이 촉발한 비자금 논란을 두고, 범죄로 얻은 수익을 법이 보호하는 것이 타당한지, 나아가 그 부를 대를 이어 누리도록 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대법관들 간 치열한 논의가 예상된다.
앞서 항소심 법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보고, 원금의 46배에 해당하는 1조3808억원을 재산분할금으로 인정했다. 단순한 재산분할을 넘어 불법 재산의 승계와 환수, 역사적 정의 실현이라는 쟁점까지 얽혀 있는 사건인 만큼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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