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역대 대북 구상과 무엇이 다른가

김주훈 기자 (jhkim@dailian.co.kr)

입력 2025.09.26 04:05  수정 2025.09.26 04:05

'교류·관계정상화·비핵화' 3단 구상

"햇볕정책 비슷" vs "압박·제재가 답"

'두 국가론·현재의 핵 인정' 논란 증폭

결국 '北 태도가 관건' 李 딜레마 가중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인 이른바 'END 이니셔티브'가 공개됐다. '포괄적 대화'를 기반으로 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 핵심이다. '비핵화'를 거부하는 북한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류를 통한 신뢰 회복을 우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진보 정권이 선보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과 함께, 자칫 북핵만 인정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에 대한 여야 평가는 명확하게 엇갈린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중단·축소·비핵화'로 이어지는 3단계 비핵화를 제시했지만, 이번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선 한 발짝 나아가 한반도에서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END)'하겠다고 천명했다.


한반도 냉전 종식 방법론인 'END'는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로 구성됐다. 영문 첫 글자를 딴 것이 END다. 단순한 약칭이 아닌, 이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의지가 담긴 단어다. "가장 확실한 평화는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를 실현하기 위해 북한과의 교류를 통해 관계를 정상화하고, 나아가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최종적으론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주장인데, 당장 통일이 아닌 '두 국가론'을 인정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정도로 이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은 논란으로 중심에 있다. 여기에 대통령실과 통일부 장관 간 입장도 엇갈리고 있는 탓에 평화 구상에 대한 완결성에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두 국가'를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입장에 서 있지 않다"며 "정부 입장에선 남북 관계는 통일될 때까지의 잠정적인 특수 관계라는 기본합의서 입장에 서 있다"고 밝혔다.


반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남북은 사실상의 두 국가, 이미 두 국가, 국제법적 두 국가"라면서 "적게는 50∼60% 국민이 북한을 국가라고 답한다. 국민 다수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유엔에 남북이 각각 가입된 만큼, 현실적 관점에 따라 유연하게 남북 관계를 판단하고 있다는 의도지만, 사실상 외교안보의 고위당국자 두 명이 '두 국가론'에 대해 엇갈린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가 지난 20-2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문제는 '두 국가론'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과거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두 국가론'을 주장했을 당시에도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진 주제였다. 남북대결주의 회귀에 대한 분노와 차기 민주정부가 나아가야 할 남북 정책의 현실적 방향이라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설익은 발상"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대통령실은 '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 구상은 선후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남북 또는 미북 대화를 통해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 과정이 상호 추동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나 '두 국가론' 논쟁은 물론 비핵화 단계까지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당장 우리 정부에 적대심을 드러내고 있는 북한과 '교류'부터 난항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에 기반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통해 대북 정책을 추진했고, 신뢰 구축에 따른 여러 성과를 낸 바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한 것부터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 등 교류가 이뤄졌다. 그러나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방안과 대북제제 완화 등 쟁점을 두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렬된 이후, 북한의 대화 거부 나아가 핵과 미사일 위협은 가중됐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과 마찬가지로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 열쇠는 북한의 태도다. 우리 정부는 자칫 '현재의 핵'을 인정하고 인식을 줄 수 있는 '동결'보단 '중단'이라는 단어를 활용한다. 향후 핵·미사일 관련 모든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겠다는 계획이지만, 북한은 '비핵화'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관계 정상화'가 자칫 '현재의 핵' 용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대전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이 원하는 바를 다 들어줬는데도 '비핵화는 절대 있을 수 없다' '한국과 마주 앉지 않겠다'는 북한의 입장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이 대통령이 가겠다고 외친 길은 실패가 자명한 길"이라고 비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CCMM빌딩 컨벤션홀에서 'K-제조업 붕괴론과 산업 코리아의 생존전략'을 주제로 열린 데일리안 창간 21주년 2025 글로벌 경제산업 비전 포럼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햇볕정책, 평화번영정책으로 이미 두 번 좌절한 환상을 세 번째 꾸겠다는 것"이라며 "역사상 실제로 비핵화에 성공한 사례를 보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리비아 모두 강력한 경제제재와 국제적 압박을 통해 핵을 포기했는데, END 방식이 아니라 압박과 제재가 답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권에선 역대 보수 정권에서 펼친 압박과 제재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김대중 정부에서 펼친 '햇볕정책'이 이 대통령의 평화 구상과 맞닿아있다고 주장한다. 6·15 남북 공동선언과 개성공단 건설 성과가 대북 지원과 교류 등 노력으로 이뤄진 만큼, 이 대통령의 END 구상도 남북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해 "윤석열 정부는 퍼주기를 하지 않아서 남북 관계를 살려냈나"며 "이 대통령의 정책은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 핵을 인정하고 동결로 가자는 것에 대해 한국·미국·북한이 모두 END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권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보수 정권은 그동안 북한 문제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정책을 내놨는지 의문"이라면서 "북한의 태도가 최대 변수인 만큼, 비핵화를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다면 북핵 관련 프로그램을 중단으로 이어지게 해서 평화로 끌어내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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