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프렌치 75의 총구, 오늘의 미국을 겨누다 [D: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0.06 15:38  수정 2025.10.06 15:39

폴 토머스 앤더슨의 신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북미 극장가를 장악했다. 개봉 첫 주말 2200만 387달러를 기록하며 감독 필모그래피 중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경신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출연작 가운데서도 최고 평점을 얻었다. 글로벌 수익은 6642만 달러를 넘어섰으며, 현재 북미 박스오피스 1위 자리에 올라 있다.


일찌감치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로도 거론되며 올해 시상식 판도를 흔들 대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국내 개봉은 지난 1일 시작됐다.


앤더슨은 이 작품을 구상하면서 토머스 핀천의 소설 '바인랜드'(1990)에서 영감을 받았다. 소설이 1960~80년대 히피와 급진주의자 세대를 그렸다면, 영화는 이를 현재로 옮겨와 트럼프 시대의 미국과 맞닿은 이야기로 재해석했다.


겉으로는 위기에 빠진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사투를 그리지만, 영화의 초점은 훨씬 넓다. 이야기 곳곳에 이민자 단속, 인종차별, 백인 우월주의 조직이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멕시코 국경의 이민자 구금소 습격 장면으로 포문을 연다. 저항 세력 프렌치 75가 군 기지를 공격해 구금된 이민자들을 해방 시킨다. 이름 그대로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이 사용한 75밀리 야포에서 착안한 조직이다. 발사 속도가 빠르고 정밀해 혁신적 무기로 불린 이 야포처럼, 조직명은 곧 격렬하고 무력적인 저항의 상징이다.


극 중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은 일루미나티와 KKK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백인 우월주의 집단이다. 프렌치 75를 체포해 제압한 록조 대령(숀 펜 분)은 입회를 위해 자신과 연결된 주인공 가족을 제거하려 하는데, 이 설정은 특정 혈통만을 인정하고 나머지를 배제하는 구조를 은유한다.


과거 미국의 인종 간 결혼 금지법 같은 제도적 차별이 무너진 지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편견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할리우드 산업의 현실과도 맞물린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해외 제작 영화 100% 관세’ 방침은 자국 영화 보호를 명분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제작비 급등과 편수 감소, 티켓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정책이다.


이미 해외 로케이션에 크게 의존해온 할리우드 제작 환경에겐 치명적인 압박이다. 다른 나라를 배제시키며너까지 자국 영화 보호를 위해 내세운 정책이 오히려 경쟁력과 다양성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소라는 점이 아이러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은 아버지와 딸의 생존을 둘러싼 드라마, 미국 사회와 영화 산업이 마주한 정치·경제적 압박을 교차시키며, 할리우드가 사회 비판의 장인 동시에 정치적 압력의 직접적인 당사자임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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