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갈등 심화에 車관세, 노란봉투법까지
취임 이래 가장 큰 위기… 글로벌 견제 뚜렷
美 가격 동결·투자 지속… '정면돌파' 승부사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추구하는 정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4월 글로벌 주요 무대에서 '올해의 차'를 휩쓴 현대차그룹에 박수와 환호가 쏟아지던 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내실과 외형적 성장을 빠르게 이뤄내며 글로벌 주요 업체와의 경쟁에서 끝내 승기를 쥐었음에도, 정 회장은 자축이 아니라 안주하지 말자는 당부를 택했다.
정 회장의 덤덤한 메시지는 화려한 성과에 자축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글로벌 시장 상황에 기인한다. 올해 정 회장의 어깨에 내려앉은 수많은 과제는 그간 겪었던 코로나19,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보다도 돌파구를 찾기 힘든 전례없는 '위기상황'이다.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며 미국에서 내지 않던 자동차 관세를 부담하게 됐고, 미중 갈등이 거세지며 공급망 다변화의 필요성도 절실해졌다. 유럽 시장에서는 중국 브랜드가 대거 진입하며 경쟁이 치열해졌고, 국내 시장에선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며 노조의 입김마저 거세졌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미국의 자동차 관세다. 지난 7월 일본, EU에 이어 우리나라 역시 지난 7월 말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지만, 투자방식 등에 이견을 보이면서 여전히 한국만 25%의 관세를 적용받고 있어서다.
한국이 관세 15%를 적용받을 수 있는 시점이 불투명한 가운데, 현대차그룹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미 대미 관세로 줄어든 영업이익이 지난 2분기에만 1조6000억원이 넘는다. 2분기의 겨우 미리 쌓아둔 물량으로 절반 수준의 타격을 입었던 것을 감안하면, 3분기는 더 큰 비용을 부담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 시장인 북미에서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 이달부터는 미국 내 전기차 보조금 지원도 끊겼다. 그간 미국에서 전기차를 판매하면 지원받았던 7500달러(한화 약 1070만원)의 보조금 만큼 판매 가격이 비싸진 것이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 발빠르게 진출해 경쟁력을 키워왔던 현대차그룹으로선 미국 시장 점유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최근 재점화한 미중 갈등은 차량의 장기적인 생산 안정성에도 위기감을 불러오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주요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맞불을 놓으면서다. 중국이 수출을 막은 희토류 7종에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등에 필요한 원료가 대거 포함돼있어, 규제가 장기화되면 생산 타격이 불가피한 구조다.
미국과 중국만 문제가 아니다. 유럽에서는 미국 문턱을 피해 시장 다변화를 꾀하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공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전기차 시장 경쟁을 과열시키고 있다. 유럽은 현대차그룹의 주요 시장 중 하나인데다, 전기차 보조금이 끊긴 미국 시장을 대체할 전기차 주요 시장으로 꼽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내에서는 새정부 출범 이후 상법개정안, 노란봉투법이 연달아 통과되며 부담이 커진 상태다.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어느것 하나 현대차그룹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다. 글로벌 미래차 패권을 쥐기 위한 경쟁에서 비롯된 문제가 대부분인 만큼, 오히려 자국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간 경쟁이 앞으로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산재한 과제 속 정 회장이 택한 방법은 이번에도 '정면돌파'다.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간 수년에 걸쳐 입증했던 '준비된 정면돌파'가 올해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대 시장인 북미에서의 관세 대응만 봐도 정 회장의 승부사 기질은 여실히 드러난다. 관세를 상쇄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인 시장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는 대신, 피해를 그대로 흡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전기차 보조금 종료로 수요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자체적인 할인까지 나섰을 정도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유도해 시장 점유율을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할 상황에서 발표한 파격적인 투자 발표 역시 마찬가지다. 정 회장은 올해 현대차와 기아를 통틀어 향후 5년간 112조원 이상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복합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간 열심히 투자해왔던 미래 사업 발판도 서서히 성과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적자 행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기술 투자를 지속해왔던 로봇 분야는 올 연말 미국 조지아 공장(HMGMA)에 투입된다. 부품계열사인 현대모비스 역시 로봇 부품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오랜시간 공들여온 로봇 기술의 완성도가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의미로 읽힌다. 로봇을 통한 생산 비율이 늘어날 수록 생산 효율성이 극대화되고, 원가 절감 효과가 커질 예정이다. 관세, 공급망 다변화 등으로 비용 부담이 커진 현대차그룹에 장기적인 기회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수조원의 투자를 거듭한 소프트웨어 계열사 포티투닷의 성과를 증명할 날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포티투닷은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경쟁력을 위한 현대차그룹의 주요 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자회사로, 내년 첫 시제품 공개에 이어 오는 2027년 양산 모델 출시를 앞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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