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협상 초반 '낙관'…"한미협력 공고"
협상 '지지부진'에 부정평가 1위 '외교'
'국익 중심' 협상 멀어지면 '타격' 불가피
주도권 노리는 국민의힘…李책임론 고삐
이재명 정부가 한미관세 협상 늪에 빠져 국정 동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역량을 모두 동원할 정도로 중대 사안이지만, 협상이 녹록지 않자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관세 협상이 이재명 정부 족쇄로 평가되는 탓에 향후 결과에 따라 정부 운명도 좌지우지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는 출범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미 관세 협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로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고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는 방안이라고 판단한 탓에 우리 정부로선 피할 수 없는 사안이다. 문제는 대통령 탄핵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발한 이재명 정부 입장에선 안정성과 성과를 보여줘야 하지만, 모든 이슈가 한미 협상에 매몰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과제는 '안정'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혼란을 바로잡고 대내외적으로 안정성을 보여줘야 했다. 내각 구성은 물론 해외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귀환을 알리며 국정 정상화에 총력을 쏟았지만, 해소되지 않은 한미 관세 협상은 정권 부담으로 존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기존 부문별 관세와 별도로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서신을 공개했다. 대통령실은 경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최종 시한(상호관세 유예조치)인 8월 1일 전까지 협상을 타결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고, 결국 기존 25%였던 관세는 15%로 낮아졌다.
당시 김용범 정책실장은 "수출 환경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제거됐다"며 "우리 기업은 주요국 대비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게 됐다"고 자평했다. 우리 농업에 영향을 미칠 쌀과 쇠고기 시장을 추가 개방하지 않는 동시에 일본과 동일한 수치라 여권에선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에 3500억달러(약 487조원)를 투자하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이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통상 합의에 포함된 3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는 양국 전략산업 협력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자평과 달리, 미국과 투자 방식에 대한 이견이 점차 드러났고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선불 투자' 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로선 당혹스럽다는 입장이지만, 야권에선 협상을 안이하게 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가 협상을 책임지고 주도한 4개월여 동안 혼란만 거듭되자, 국민의힘에선 "이재명 정권이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 관세 협상이 거의 실패에 가깝다"고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대통령실은 협상 타결 초반 "수출 환경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제거됐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 합의문을 서로 얘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게 마무리" 등 평가를 내놓은 것과 달리, 3500억 달러 대미 투자펀드 조성 논란이 불거지자 "이견을 좁혀 나가는 과정인 만큼, 상세한 협의 진행 상황을 알리지 못한다"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7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민이 정부에게 듣고 싶은 말은 협상이 잘 됐다는 허울뿐인 선전이 아니다"라면서 "어떤 조건으로 어떤 자금이 동원돼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그것이 국민과 기업에 어떤 부담으로 돌아올 것인지 상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대표 주장대로 실제 민심은 지지부진한 한미 관세 협상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이 대통령 선출 직후 고위 공직자 인사와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 사면, 대법원장 사퇴 압박에 따른 삼권분립 등 여러 논란이 불거졌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한 요인으로 꼽히지만, 현재 최대 부정 평가는 '외교'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무선 100% 전화면접 방식으로 이 대통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긍정평가는 54%, 부정평가는 35%로 나타났다. 직전 조사인 9월 넷째 주(23~25) 조사보다 긍정평가는 1%p 하락했고 부정평가는 1%p 상승했다. 긍정평가 이유로는 '경제·민생'(16%)이 가장 많이 꼽혔다. 반면 부정평가 이유로는 '외교'가 18%, '친중 정책·중국인 무비자 입국'이 8%로 뒤를 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현재 우리 정부는 막판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각료급 4명이 미국 워싱턴에 총출동했다. 최대 쟁점으로 꼽히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집행 방식을 조율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협상이 타결될지에 대해선 신중한 분위기지만, 여기서 개최될 것으로 전망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종 결과물을 도출하지 못할 경우 정부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워싱턴 상무부 청사를 찾아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2시간 동안 협상을 벌였다. 구체적인 협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미 투자액의 집행 방법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에게 대미 투자 선불 요구가 한국 외환시장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고, 베선트 장관은 "충분히 설명하겠다"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설득이다. 베선트 장관이 전액 선불 투자가 어렵다는 우리 정부 입장을 이해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대미 투자 패키지에 대출과 보증을 포함하거나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것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구 부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느냐 하는 부분은 진짜 불확실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상 양국 실무 협상단이 진전을 보이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판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향후 국정 동력을 회복할 모멘텀으로 한미 관세 협상을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협상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당장 야권은 협상 실패를 염두에 둔 우리 제조업 산업 피해 최소화에 나서고 있다. 향후 협상이 한국에 불리하게 영향을 미칠 경우, 이 대통령 책임론과 함께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현재로선 한미관세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결론"이라면서 "이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신뢰가 없다는 뜻이며 더욱이 협상력이 부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 대표가 말한 것처럼 국내 생산 기반을 전략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생산 세액공제'를 당론으로 추진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방어하는 입장인 탓에 국내 생산 기반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국민의힘이라도 나서서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그동안 한미관세 협상 영향으로 국정 동력이 서서히 감소했다는 지적과 함께, 국익에 부합한 협상을 끌어낸다면 지지율 반등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현재 이 대통령 지지율의 문제는 한미관세 협상이 지연된 것과 정당 지지율이 대통령 지지율보다 떨어진 것"이라며 "경제는 한미관세 협상에 발목이 잡혀있고, 정치는 당에 잡혀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 협상이 잘 풀려도 지지율 반등에 큰 모멘텀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발목에 달고 있는 납덩이는 풀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정세가 국제 질서에 종속된 상황인 만큼, 우리 입장에선 중국과 미국이 있다면 미국과의 경제적 관계에서 서로 윈윈하고 국민 정서상 공감할 수 있는 수준 범위 내에서 합의를 빨리 끌어내는 것이 좋을 뿐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