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대책 영향권 '수도권' 반발 확산
자세 낮춘 李정부…여론 진화 총력
기회 잡은 국힘, 수도권 여론전 본격화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마친이재명대통령이 27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1호기에서 내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의 10·15 대책 발표 이후 수도권 '부동산 민심'이 심상치 않다. 2주가 지났지만 수요 억제책 위주의 정책에 대한 일부 반발은 여전하고, 여기에 정부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까지 겹치는 등 정부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우선 자세를 낮추고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야권에선 '부동산 내로남불' 프레임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어 논란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28일 서울 성동구 재건축 추진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최근 부동산 논란으로 사퇴한 이상경 전 1차관에 대해 "송구하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공직자가 어떤 정책을 입안·실행하고, 또 발언하는 데에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며 "저희가 정책을 실행하는 데 있어 불가피한 선택이 많이 있었는데, 국민이 이 점을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현재 정부는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민심의 반응을 신속하게 파악해 대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 전 차관의 사퇴다. 그는 지난 19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만약 집값이 유지된다면 그간 오른 소득을 쌓은 후 집을 사면 된다"고 말해 질타받은 바 있다. 문제는 배우자가 과거 경기 성남시 백현동의 30억원대 고가 아파트를 갭투자(전세 낀 주택 구입) 방식으로 구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부동산 내로남불' 논란은 확산됐다.
'부동산 내로남불'은 정부 고위공직자는 부동산 투자로 큰 수익을 얻은 것과 달리, 일반 국민에겐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이 전 차관과 이억원 금융위원장 등 인사는 '갭투자' 의혹에 선을 긋고 있지만, 고가 아파트를 소유한 채 '수요 억제책' 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펼쳤다는 점에서 민심이 흔들리기엔 충분했다. 당장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논란이 된 정부여당 인사를 두고 '부동산 일타 강사'라며 꼬집으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논란이 된 정부여당 인사를 '부동산 일타강사'라고 주장했다. ⓒ주진우 국회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결국 이 전 차관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의를 표명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곧바로 사의를 수용하는 등 '부동산 민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현재 대통령실은 10·15 대책 이후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촉각을 세우는 분위기다. 이미 대책을 발표했기 때문에 야당이 요구하는 '전면 폐지' 카드는 꺼낼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일부 논란이 된 사안에 대해선 민심을 청취해 지속적으로 조치와 해명에 집중하고 있다.
이 전 차관 사의 수용은 물론, 서민 이자 경감을 위한 소위 '대출 갈아타기'가 이번 10·15 대책으로 막혔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한발 물러선 것이다. 당초 정부는 규제지역 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대환대출에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0%를 적용했다가, 반발이 커지자 기존처럼 70%를 적용하도록 예외를 두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한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야권에선 "시장 혼란을 가중시켰다"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정치권에선 정부가 부동산 문제에 대해 신속하게 대처하는 배경엔 문재인 정부의 사례가 거론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최대 과제였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8번의 정책을 내놨지만, 집값은 물론 민심도 돌리지 못했다. 여기다 정부 고위공직자의 다주택 문제가 불거지면서, '부동산 내로남불' 논란은 확산됐고 문 전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넘기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는 중도층도 지지를 보냈기 때문에 지지율 80%를 유지한 것인데, 이들이 나중에 부동산 문제가 피부로 체감되니까 등을 돌린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정부 정책을)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결국 이재명 정부가 안정과 성장을 이뤄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부동산 민심에 촉각을 세우는 것과 달리, 부동산 안정화를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단순히 부동산 수요 억제책만 펼치는 것이 아닌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 지방의 인프라를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주식 시장 활성화에 총력을 쏟는 이유도 국민의 주된 자산 관리 수단이 부동산에 몰려 주택 시장 안정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부동산 시장 안정화 방안 초점엔 '부동산' 단일 정책이 아닌, 주식 시장·지방 발전 등 여러 정책을 복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지난 27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현시점에서 불가피한 정책이며, 부동산 폭등은 미래 재앙이 될 수밖에 없는 만큼 방치했을 때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정부는 앞으로도 일관적으로 실수요자, 신혼부부, 생애 첫 주택 구입자, 무주택자 등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분의 희망을 지지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재명대통령이 지난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과 대통령실 의지보다 '부동산 민심'의 벽은 높은 상황이다. 정부여당은 10·15 대책이 '국민 주거 안정' 대책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단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한 억제책을 펼친 이후, 공급 대책이 이어진다면 안정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정부여당이 밝힌 것처럼 이는 장기적 관점의 대책이기 때문에 시장은 물론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수도권 민심의 반발은 만만치 않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CBS노컷뉴스의 의뢰로 지난 25~26일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무선 ARS 100% 방식에 따라 실시한 10·15 대책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 지역 부동산 시장 정상화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35.0%,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54.6%로 나타났다. 특히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는 '잘하고 있다' 응답이 47.2%, '잘 못하고 있다'는 49%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치권에선 역대 정부마다 펼친 부동산 정책을 '양날의 검'으로 평가한다. 집값 안정화는 역대 정부의 최대 과제지만, 잡기가 쉽지 않은 탓에 매번 야권의 공세 명분만 줬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책을 연속성 있게 추진하려면 민심의 뒷받침이 필요하지만, 야당의 부동산 민심을 흔들기 위한 여론전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10·15 대책 발표 이후 줄곧 정부 책임론과 함께 정책 전면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오는 2026년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핵심이 '부동산'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당은 부동산 민심과 밀접한 '수도권·청년'의 지지세를 확보하기 위해 여론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서울 마포구 서울청년센터에서 열린 '청년과 함께하는 부동산 정책 간담회'에서 "이재명 정권은 청년들을 잔혹한 생존게임으로 밀어 넣고 있다"며 "청년에게 오늘 무리하고 내일 영끌거지가 될지를 강요하고 있는데, 국민의힘은 언제나 청년 편에 서서 함께 고민하고 위선적인 정권과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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