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 상징’ 딕 체니 전 부통령 별세…美 역사상 최강 부통령

김상도 기자 (marine9442@dailian.co.kr)

입력 2025.11.04 23:09  수정 2025.11.05 05:21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막강한 권력 행사

9·11 테러에 대응해 ‘테러와의 전쟁’ 설계

말년에 트럼프 맹비난하며 해리스에 투표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2011년 9월9일 워싱턴 아메리칸기업연구소에서 열린 9.11테러 관련 토론에 참석해 생각에 빠져 있다. ⓒ AFP/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네오콘’(신보수)의 상징 인물이자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에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던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별세했다. 84세.


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체니 전 부통령의 가족들은 4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그가 폐렴 및 심혈관 질환 합병증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딕 체니는 백악관 비서실장을 비롯해 와이오밍주 연방 하원 의원, 국방부 장관, 그리고 미국 부통령으로 재직하며 수십 년 동안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고 덧붙였다.


가족들은 이어 “그는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나라를 사랑하고, 용기와 명예, 사랑과 친절, 그리고 플라이 낚시를 즐기는 삶을 가르쳤다”며 “우리는 그가 우리나라를 위해 한 모든 일에 깊이 감사하며, 그를 사랑하고 또 그에게 사랑받았던 축복을 평생 간직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46대 부통령으로 재직(2001~2009)했던 체니 전 부통령은 부시 행정부에서 이른바 ‘네오콘들의 대부’로서 ‘선제 공격’과 ‘정권 교체’를 핵심으로 한 매파적 외교안보 노선을 이끌었다. 9·11 테러 이후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테러와의 전쟁’도 실질적으로 그가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핵심 설계자’로 불렸고, 막강한 영향력으로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조지 부시 행정부 말기에 자신의 비서실장인 스쿠터 리비의 사면을 부시 당시 대통령에게 요구하다가 거절당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그의 비서실장인 리비는 부시 정부가 주장하던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부의 핵개발 의혹을 허위라고 보고한 중앙정보국 비밀요원인 발레리 플레임 윌슨의 신원을 노출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체니 전 부통령의 주도 하에 이라크전쟁의 명분을 만들려고 후세인 정부의 핵개발 의혹을 조작했다. 에너지·건설 회사인 핼리버튼의 회장이었던 체니는 부통령으로서 이라크 전쟁을 지휘하면서 핼리버튼에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막대한 이권을 챙겨줬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41년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태어난 그는 와이오밍대에서 정치학 석사를 한 뒤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965년에 상원에서 인턴으로 일하다가 당시 닉슨 대통령 경제고문이던 도널드 럼스펠드의 측근으로 일하면서 빠르게 권력의 주변에 진출했다. 1974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백악관에서 럼스펠드 비서실장의 후원으로 부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럼스펠드 실장이 국방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뒤를 이어서 백악관 비서실장이 됐다. 체니 전 부통령은 1978년 고향 와이오밍에서 하원의원 당선된 뒤 1989년까지 내리 6선을 기록하며 공화당 지도부에 올랐다. 그해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국방장관에 임명돼 파나마 침공과 걸프전을 지휘했다.


그는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으로 당선됐다. 부통령에 당선된 뒤 자신을 정계로 이끌어준 럼스펠드를 국방장관으로 밀어서 기용했다. 체니 전 부통령은 8년 동안의 부통령 내내 가장 대통령에 필적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행사하려고 해서 큰 잡음이 일었다. 부통령직을 사실상 ‘대통령의 운영 책임자’로 격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외교안보 노선은 국내외에서 극단적인 논란을 불렀다. 2001년 9.11테러가 나자 테러 대응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나서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했다. 이라크 침공을 강력히 주장하며 이를 위한 명분으로 사담 후세인 이라크 체제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고 주장했으나, 나중에 조작된 주장으로 밝혀졌다. 미군이 이라크에 도착하면 해방군으로 환영받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현실은 반대였다.


체니 전 부통령은 북한에 대해선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2004년 당시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과 회담을 갖고 북한 핵 문제 해결과 이라크 추가 파병 등을 논의하는 등 한국과 인연도 깊다. 주요 포럼의 연사로 방한해 한반도와 북한 문제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2000년 대선 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 딕 체니(왼쪽)와 대통령 후보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함께 유세 연단에 오른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은퇴 후에도 회고록과 저서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옹호했다. 체니는 대표적인 반민주당 성향의 강성 공화당원이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서는 가장 강력한 비판자로 변신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위협”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유족으로 부인 린 체니와 두 딸을 뒀다. 맏딸 리즈 체니가 정치적 후계자다. 리즈 체니 하원의원도 공화당 내의 대표적인 반트럼프 인사다. 트럼프의 대통령 선거 낙선에 항의했던 1.6 의사당 폭동조사위원회에서 트럼프를 강력 비판했다. 2024년 대선에서는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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