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낮췄지만 시장 왜곡 커졌다"…알뜰주유소 정책 재검토 요구 확산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5.11.18 14:59  수정 2025.11.18 14:59

알뜰주유소 이중공급가로 정유·주유소 투자여력 약화

단기 가격인하 뒤 경쟁 약화·폐업 압력 커지는 구조 확인

“물가대응 정책, 민간 중심 체제로 재설계해야”

18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정책토론회 ‘석유유통시장 개선 방안: 알뜰주유소 정책의 한계와 과제’에서 참가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알뜰주유소의 이중공급가·형평성·투자 저해 구조가 전환기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지적되며 정유·주유소 생태계 전반을 흔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가격인하 중심 정책에서 민간 중심 자율경쟁 체제로의 단계적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석유유통시장 개선 방안: 알뜰주유소 정책의 한계와 과제’ 토론회에서 발표자들은 “고유가 시대의 물가 안정용 정책이 에너지 전환기에는 오히려 산업 생태계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며 단계적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형건 강원대 경제통계학부 교수가 18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정책토론회 ‘석유유통시장 개선 방안: 알뜰주유소 정책의 한계와 과제’에서 ‘에너지전환시대, 알뜰주유소 정책의 재평가’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형건 강원대 경제·통계학부 교수는 알뜰주유소의 가격 인하 효과는 인정하면서도 사회 전체 편익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알뜰주유소가 가격 인하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잉여는 새롭게 생긴 게 아니라 기존 생산자 잉여가 이동한 것”이라며 “ 알뜰주유소 정책으로 추가된 소비자 잉여(이득)는 연평균 3억2000만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예산을 투입하고 생산자 잉여가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효율성 개선 효과는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공급구조의 왜곡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정유사가 알뜰주유소에는 일반 주유소보다 ℓ당 60원에서 100원 정도 저렴한 공급 가격을 적용하는 이중 가격 문제가 있다”며 “생산자가 잃어버린 약 2100억원의 잉여가 알뜰주유소 운영비와 알뜰 사업자의 초과 이윤으로 전환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소득별 형평성 문제도 언급하며 “전남은 알뜰주유소 비중이 20%대이고 서울은 2%정도밖에 되지 않아 특정 지역 소비자들이 편의가 더 만들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유·주유소 산업의 투자 여력 약화도 핵심 문제로 제기됐다. 김 교수는 “2030년 무렵 대부분 기관에서 석유 수요가 급격히 감소한다고 본다”며 “정유사와 주유소는 박리다매 구조인데 다매가 되지 않으면 좌초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유사의 전환 투자 재원을 확보하려면 손익분기점을 크게 상회하는 마진이 필요한데 알뜰주유소의 이중 가격 구조가 이를 훼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소비자는 가격 상승을 우려하고 알뜰 운영자들은 초과 이윤이 있어 정책 교착이 이어지고 있다”며 “만약 물가 관리가 필요하다면 시장 개입이 아니라 유류세 탄력운영 등 실질적인 재정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알뜰주유소는 저가 공급 역할에서 미래 에너지 인프라 역할로 전환하고 도로공사·농협과 분리하며 가격 통제 압력과 인센티브는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연재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가 18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정책토론회 ‘석유유통시장 개선 방안: 알뜰주유소 정책의 한계와 과제’에서 ‘저비용주유소 진입과 경쟁구조의 재편: 알뜰주유소 정책의 장기적 함의’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두 번째 발표자인 장연재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알뜰주유소 진입 이후 시장 경쟁구조가 어떻게 약화되는지를 실증 분석했다.


그는 “알뜰주유소 정책은 직접 가격 인하와 주변 주유소의 간접 인하 효과로 단기 가격을 낮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장기 지속 가능성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대칭 비용 구조에서 저비용 사업자(알뜰)가 경쟁 우위를 가지면 고비용 주유소는 장기적으로 퇴출 압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알뜰주유소 반경 2km 내 일반 주유소의 폐업 위험률은 2.5배 높아진다”며 “반경 1km로 좁히면 위험은 더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알뜰주유소 진입 후 주변 경쟁 주유소가 5개에서 7년 뒤에는 절반으로 줄고 9년차에는 두 곳만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입 후 5~6년이 지나면 단기 가격 인하 효과는 축소되거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은 수준이 되고 경쟁 감소로 시장 지배력이 커지면서 가격이 다시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전기차 확대 속에서 기존 주유소는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분산전원형, 모빌리티 허브, 물류 거점 등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산업 전환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교란 우려를 줄이려면 공급 가격을 국제유가·물가와 연동하는 시장친화적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며 “정보 공개도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본부장(왼쪽부터),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 김형건 강원대 경제·통계학부 교수, 조홍종 한국자원경제학회장, 장연재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박한서 산업통상부 석유산업과장, 정시내 한국석유공사 유통사업처장이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석유유통시장 개선 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토론회에서는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던 초기 단계와 달리 시장 규모 축소·석유 수요 감소·에너지 전환이라는 환경 변화 속에서 현행 알뜰주유소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지적됐다. 참석자들은 정유사·주유소의 전환 투자 재원을 보전하고 시장 기능을 복원하기 위한 단계적 개편 필요성에 의견을 모았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