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여성·청년…발코니, ‘변방’에 보내는 ‘뚜렷한’ 시선 [출판사 인사이드⑭]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5.11.23 13:03  수정 2025.11.23 13:03

<출판 시장은 위기지만, 출판사의 숫자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랜 출판사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며 시장을 지탱 중이고, 1인 출판이 활발해져 늘어난 작은 출판사들은 다양성을 무기로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다만 일부 출판사가 공급을 책임지던 전보다는, 출판사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개합니다. 대형 출판사부터 눈에 띄는 작은 출판사까지. 책 뒤, 출판사의 역사와 철학을 알면 책을 더 잘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지역·여성·청년, 출판사 발코니의 ‘뚜렷한’ 소신


2019년 부산에서 문을 연 출판사 발코니는 지역, 여성, 청년을 주요 키워드로 한 책을 펴내고 있다. 작가 겸 대표인 희석은 발코니의 방향성에 대해 “세 가지 키워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변방’으로 분류되는 것들이다. 이미 확성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의 지면이 필요한 이들과 책을 만들어가는 것이 발코니가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계기는 2016년 5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발생한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주류가 아닌, ‘그 반대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후 2019년 발코니를 통해 책으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주제의식이 뚜렷한 작품을 선보이는 독립출판사만의 특장점을 적극 활용하는 셈이다. 2020년, 연정 작가가 자신의 내면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놓은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만 오늘 밤은 어떡하나요’는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끌어내며,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나아가 일본과 인도네시아에 판권 수출까지 이뤄내는 등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독립출판물의 저력을 입증했었다.


이후 희석 작가가 직접 쓴 ‘우주 여행자를 위한 한국살이 가이드북’, ‘전국불효자랑’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희석 대표는 성차별에 찬성하는 한국, 노 키즈 존을 선호하는 한국, 학벌주의를 찬양하고 부동산에 영혼을 거는 한국 등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부끄러움에 대해 담은 ‘우주 여행자를 위한 한국살이 가이드북’에 대해 “발코니의 색깔을 결정한 중요한 책이라 생각한다”면서 “서정적인 에세이만 내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를 겨냥하는 블랙코미디도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책이다.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에 150권만 소량 제작해서 출전했다가 도서전이 끝나기 전에 완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근 출간한 ‘전국불효자랑’은 ‘정상가족’의 환상을 깨고,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효’를 거부한다고 설명하며 “앞으로 모두가 환호하는 이야기를 책에 담는 게 아니라, 어둡고 아프더라도 반드시 지면을 통해 밝혀야만 하는 책을 내겠다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 발코니가 지워내는 ‘구분’


부산에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희석 대표는 이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며 약간의 ‘물리적인’ 불편함 외에는 크게 다른 점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과의 물리적 거리 때문에 힘든 점은 있다. 예를 들면, 대형서점 MD와의 대면 미팅 등을 지역 출판사는 대체로 포기해야 하고, 이로 인해 메인 시장 노출이 더 줄어드는 경향도 있다”면서도 “다만, 이건 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이 출판의 중심은 아니다. 지역 인프라를 이용해 지역 출판사만의 방식으로 각 서점을 공략하고 있다”면서 “부산에서 출판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에서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오히려 서울에서 출판사를 차렸다면 과포화된 시장에 밀려서 일찍이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제가 속해 있는 지역에 중심축을 놓고 시도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것, 그게 지역 출판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대신 ‘텍스트힙’(독서는 힙하다) 열풍 속, 달라지는 트렌드를 부지런히 쫓아가며 여느 출판사보다 독자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가는 중이다. 희석 대표는 모두가 작가가 될 수 있는 현재, ‘독자는 줄어들지만 책 만드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시선보다는 ‘독자와 작가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최근 트렌드를 분석했다.


그는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고,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이 된다”며 “이런 트렌드를 모르면 현재의 텍스트힙 열풍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저 작가는 무명인데 왜 저렇게 인기가 많지? 저런 얄팍한 책이 왜 잘 팔리는 거지? 저런 것도 책이라 부른다고?’ 등의 고루함을 반복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발코니도 여러 북페어에 출전하고 있는데, 작년에 방문했던 독자님이 올해엔 창작자가 돼 본인 부스를 차리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 흐름을 이해하면 책 만드는 일 자체를 더욱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10대 독자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그들이 미디어 능력을 활용해 직접 책을 홍보해 주는가 하면 종이책의 물성을 즐겨주는 등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독자들이 많아졌다며 “단순 독자가 아니라 창작의 영역으로도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현상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구분은 지우되, ‘배제된’ 이들의 이야기로 발코니만의 소신을 뚝심 있게 이어나갈 계획이다. 희석 대표는 “아직 가제이지만, ‘전설의 아파트’라는 장편 소설을 준비 중”이라며 “아파트라는 공간은 한국 사회의 축약형이라 생각한다. 외국인 차별, 성차별, 외부인 배제 등 각종 부당함이 일어나는 현장을 유쾌한 소설로 풀어내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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