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내년 1월 4일까지
22년 만에 완공 후 첫 태양을 맞이할 타지마할 앞에 두 명의 말단 근위병이 보초를 서고 있다. 이들은 가족처럼 진한 우정을 나눈 휴마윤과 바불이다. 잡담이 금지된 가운데 타지마할을 등지고 장난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황제 샤자 한이 더 이상 타지마할만큼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상에 나오지 않도록 공사에 참여했던 2만 명의 손목을 자르도록 명령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이들이 다름 아닌 말단 근위병인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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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무대 바닥에 넘실대는 붉은 피와 널브러진 천조각. 그리고 불안에 떨고 있는 바불과 “이건 명령”이라는 말로 자신의 양심을 마취시킨 휴마윤의 행동은 이미 이들이 2만 명의 손목을 잘라낸 이후의 상황임을 보여준다.
인도계 미국인 극작가 라지브 조셉이 쓴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2015년 미국에서 처음 공연됐고, 국내에선 2017년 대학로 초연했다. 초연 당시에도 단 두 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밀도 높은 서사와 호흡, 최소한의 장치와 조명으로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무대로 호평을 얻었다.
그런데 8년 만에 재연하는 이 작품이 유독 더 아프게 와닿는 건, 불과 1년 전 한국을 휩쓸었던 비상계엄의 공포, 그리고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였던 이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한 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섞여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휴마윤이 그랬던 것처럼 일부 관료들은 위헌적인 계엄 포고령 앞에서도 “명령”이라는 말로 이를 실행하고, 반성보다는 “절차에 따랐을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무대는 권력의 부역자들, 그 비겁한 관료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투영한다. 무대 위의 비릿한 피 냄새가 유독 역겹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사회의 썩은 환부를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건, 극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 타지마할은 그림자조차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무대는 어두컴컴하기만 하다. 휴마윤과 바불은 물론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특정 권력을 위한 ‘아름다움’을 위해 힘없는 이들이 희생당하는 현실이 한없이 씁쓸하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 홀로 남은 휴마윤에겐 어쩌면 직접 보지 못한 타지마할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지도 모를 광경이 펼쳐진다. 보이지도 않는 아름다움을 지키라는 부당한 명령에 생각을 멈추고 행동한 휴마윤은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현실의 그들에게 이 연극은 오래 전부터 경고를 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내년 1월 4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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