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선사 현금여력 확대와 중형선 발주 집중으로 시장 구조 변화 이끌어
IMO 규제 강화, 미국의 중국 견제 맞물리며 국내 조선사 수주 우위 강화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지난 2024년 인도한 1만3000TEU급 컨테이너 운반선의 모습. ⓒHD현대
국내 조선업계가 올해 전체 수주가 줄었음에도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이례적인 반등을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선사들의 수익성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동안 투자 공백이 컸던 중형 컨테이너선 교체 수요가 본격화되면서 발주가 집중적으로 늘어난 결과다. 여기에 환경 규제 강화와 미국의 중국 견제가 맞물리며 국내 조선사들이 컨테이너선 수주에서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누적 기준 국내 조선업 전체 수주량은 734만CGT로 전년 동기 대비 16.7%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컨테이너선 수주량은 226.0% 증가한 378만CGT를 기록하며 예상을 뛰어넘는 강세를 나타냈다.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HMM으로부터 1만34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2조1300억원에 수주했다고 밝혔다. 이 계약을 포함해 HD현대는 올해 컨테이너선 69척(72만TEU)을 확보하며 글로벌 호황기였던 2007년(79만3473TEU) 이후 최대 규모 실적을 달성했다.
삼성중공업은 아시아 기반 선사로부터 대형 컨테이너선 7척을 약 1조9220억원 규모로 따내며 올해 수주 포트폴리오에서 컨테이너선 비중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한화오션도 연간 수주 실적 가운데 컨테이너선이 13척을 차지해 전체의 40%에 이르면서 컨테이너선 시장 강세가 뚜렷하게 반영된 모습이다.
그간 컨테이너선은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 선종이었기 때문에 중국 조선소가 강세였고 국내 조선사 입장에서는 수익이 낮아 적극적으로 수주하지 않던 분야였다.
그러나 최근 시장 구조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 시기 고운임과 홍해 사태 장기화로 글로벌 선사들의 수익성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신규 선박 발주를 뒷받침할 현금 여력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선사들의 풍부한 재무 여력은 올해 컨테이너선 발주 증가의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도 교체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30년까지 2008년 대비 대략 10~20%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는 새 규제안을 추진하고 있고 2027년부터 5000t 이상 선박을 대상으로 탄소 배출 기준과 가격 규제를 단계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기준을 초과한 배출에는 t당 최대 380달러 수준의 부담금이 부과된다.
이 같은 규제는 컨테이너선에 가장 먼저 영향을 준다. 컨테이너선은 유럽 등 규제가 강한 항로에 필수적으로 투입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연료 효율과 배출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운항 자체가 어렵다. 이 때문에 노후 선박을 환경 기준에 맞춰 교체해야 하는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또한, 중형선 수요 증가 역시 전반적인 컨테이너선 발주 규모를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오랫동안 투자 공백이 이어졌던 8000TEU 이하 중형 컨테이너선의 교체·확대 수요가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중국 견제도 국내 조선사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내년 10월부터 중국산 선박에 t당 50달러의 신규 입항료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한 선박을 미국 노선에 투입하는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글로벌 선사들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중국 대신 비중국권 조선소로 발주처를 조정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양종석 한국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올해 컨테이너선 발주가 늘어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선사들의 수익성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라며 "홍해 사태 장기화로 항로가 길어져 필요한 선박 수가 증가했고 코로나 시절 고운임의 영향으로 충분한 현금이 확보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IMO 환경 규제 강화로 교체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그동안 투자가 부족했던 8000TEU 이하 중형 컨테이너선 발주가 올해 크게 늘어난 점도 영향을 줬다"며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으로 중국으로 갈 물량 일부가 한국으로 이동한 효과는 있지만 이는 글로벌 발주 증가의 원인이라기보다 한국 조선업의 수주 확대 요인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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