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무력화 한다는데"…국민의힘, 길 막힌 '대여 투쟁'에 한숨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입력 2025.12.01 05:00  수정 2025.12.01 08:57

與, 필리버스터 제한법 강행…12월 통과 목표

국힘 "야당 입틀막법…선진화법 부정하는 것"

"위헌정당 해산심판 주도 의도 담긴 것" 분석

일각선 "野투쟁안 막히는 것…국민께 알려야"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운영위원회 국회운영개선소위원회에 더불어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를 맡고 있는 문진석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의 권리를 보장하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마저 무력화(제한)시키는 법안을 강행하면서 국민의힘 내부의 반발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사실상 야당의 유일한 입법저지 투쟁 수단인 필리버스터까지 무력화시킨 건 차원이 다른 '국회 독재'라는 비판에서다. 일각에선 합법적인 국회 내 투쟁 방안까지 거대의석을 앞세운 입법 독주로 막아서는 민주당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가 발의한 필리버스터 진행 요건 강화법인 국회법 개정안을 12월초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다. 필리버스터 진행을 위해선 국회의원 60명 이상이 본회의장을 지켜야 하고, 국회의장이 지정하는국회의원이 토론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의회에서 다수당이 수적 우세를 이용해 법안이나 정책을 통과시키는 상황을 막기 위해 소수당이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인 필리버스터는 우리나라에 지난 1964년 4월 20일 처음 시작됐다. 당시 자유민주당 소속 김준연 의원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에 나선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 선포 이후인 지난 1973년 폐지된 필리버스터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생기면서 부활됐다. 이후 민주당은 지난 2016년 당시 새누리당이 제출한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192시간 25분간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에 의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내용이 책으로 펴내지는 촌극까지 있었다.


이처럼 자기들이 이용하고 내세웠던 필리버스터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법안을 민주당이 강행하게 된 배경엔 이제 필리버스터가 국민의힘이 활용하는 카드가 됐기 때문이다. 소수야당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가 되지 않은 법안을 민주당이 강행할 때마다 필리버스터 카드를 활용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월 26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17시간 12분 동안 벌여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27일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 반대하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상정될 모든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고려하겠단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민주당은 재빠르게 본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26일 국회 운영개선소위원회에서 해당 법안을 야당과의 협의 없이 강행했다.


국민의힘 유상범 등 운영위원회 위원들이 26일 국회에서 국회법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국민의힘이 예고한 필리버스터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27일 본회의가 열린 당일 여야 원내대표단 회동에서 합의된 민생 법안 7개를 통과시키겠다는 것으로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무력화법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비추기도 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로 강행하면 더 큰 국민의 열망으로 제압하고, 사법 정의를 바로세우는 차원에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는 민주당의 법안 강행에 국민의힘 내부에선 강력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은 소수 야당의 유일한 저항 수단인 필리버스터마저 제한하는 야당 입틀막법을 처리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며 "한마디로 2012년 당시 여야 합의로 국회선진화법에 도입된 제도를 무력화시키고 선진화법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협박"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모든 법을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서 개정하는 게 무슨 민주주의냐"라며 "이렇게 마음대로 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라고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번 필리버스터 무력화 법안이 가진 의미가 '야당 죽이기'의 일환인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이 필리버스터와 대장동 항소포기 국정조사 무력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 국민의힘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 이슈를 이어가겠단 의도가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추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인용될 경우를 준비해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청구하겠단 의지를 피력해온 바 있다.


실제로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24일 서면브리핑에서 "무성의하고, 무책임한데다, 민생마저 볼모로 잡는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는 내란 옹호와 마찬가지로 정당 해산의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말도 안되는 입틀막 운운 전에 왜 필리버스터 무용론이 나오는지 새겨듣고 귀틀막 정당에서 벗어나기 바란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각에선 필리버스터까지 무력화될 경우 대여 투쟁을 벌일 수단이 사실상 부재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 말 한 마디에 현수막이 금지되고 필리버스터가 무력화되는 세상인데 이제 곧 외부 규탄대회까지 금지시키지 않겠느냐"라며 "필리버스터까지 막히면 국회에서 야당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런 법안 강행을 막기 어려우면 이를 국민들에게 확실히 알릴 길을 찾아서라도 맞서 싸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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