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해운·조선 한 몸으로…日, 차세대 선박 시장 재도전
10년간 1조엔 투입·설계 표준화…자국 발주 회귀 노린다
K-조선 독주 체제 견고하지만...중장기 경쟁구도 변화 주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28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에 있는 미 해군 기지에 정박 중인 미 항공모함 USS 조지 워싱턴호에서 미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옆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서 있다.ⓒ도쿄=AP/뉴시스
일본 해운·조선이 차세대 선박 개발을 중심으로 공동 설계·투자 체제를 구축하며 조선업 재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래 선종의 설계 기반을 통합해 자국 조선소로의 발주를 되돌리겠다는 전략이다. 일본 정부가 대규모 재정 지원·산업 재편 정책을 병행하면서 글로벌 조선 경쟁과 한미 조선업 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최근 차세대 선박 시장을 겨냥해 해운사와 조선사를 한 체계로 묶는 전면적 연합을 공식화했다. 자국 해운사의 발주를 일본 조선소로 돌리는 효과가 발생할 경우, 한국이 독주해온 고부가 선종 시장에서 장기적 경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단기간의 위협은 제한적이지만 경쟁 판도는 서서히 재편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우선(NYK)·상선미쓰이·가와사키기선등 해운 3사는 최근 이마바리조선과 미쓰비시중공업이 공동 출자한 선박 설계사 ‘마일스(MILES)’에 대한 지분 참여를 결정했다. 현재 마일스 지분은 미쓰비시중공업 51%, 이마바리조선 49%인데, 이마바리조선이 보유 지분 일부를 해운 3사에 넘기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일본에서 해운과 조선이 자본 구조까지 통합해 선박 개발 체제를 구성하는 것은 처음이다.
마일스는 지난 2013년 LNG 운반선 설계·판매 회사로 출발해 최근에는 액화천연가스(LNG)·메탄올·암모니아 등 대체 연료를 쓰는 추진선과 액화 이산화탄소(CO2) 포집·저장(CCS)에 사용되는 액화 CO2 운반선 등 차세대 선박을 개발 중이다. 일본은 해운 3사의 출자를 기반으로 차세대 선박의 설계를 단일 플랫폼에 모아 표준화하고, 일본 조선소에 우선 발주하는 내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설계 플랫폼을 통합해 여러 조선소에 판매할 계획도 있어 생산 효율성 회복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일본우선은 출자와 별도로 자국 조선소 우선 발주를 검토하고 있다. 일본에서 건조가 사실상 중단된 LNG 운반선도 재발주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일본우선은 2028년까지 보유 LNG 운반선을 약 40% 늘린 130척 규모로 확대할 계획으로, 한국과 중국이 사실상 독점해 온 발주 물량이 움직일 가능성이 열렸다.
일본 해운·조선이 차세대 선박 개발 위해 협력하며 조선업 재건에 시동을 걸었다.ⓒ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일본 정부의 지원 역시 공격적이다. 지난달 일본 정부는 선체를 경제안보추진법상 ‘특정 중요 물자’로 지정하고 조선업 부흥을 위해 향후 10년간 민관 합동으로 1조엔(약 9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일본 최대 조선사인 이마바리조선이 2위 조선사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계획도 승인했다. 두 회사의 일본 내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어서지만 한국·중국과의 경쟁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기간에 체결된 미·일 조선 협력 각서에는 조선소 현대화 투자와 희토류 조달 협력, 엔진 부품 정보 공유 허용 등 광범위한 지원이 포함됐다. 미국이 ‘마스가’ 전략을 본격 가동하며 조선업 부흥을 추진하고 있어 일본의 조선 재건 정책과 맞물려 동북아 조선 공급망이 새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일본 정부는 한국·중국에 밀려 세계 건조 점유율이 10% 수준까지 떨어진 조선업을 다시 국가 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오는 2035년까지 선박 건조량을 현재의 두 배로 늘린다는 계획도 제시됐다. 현재는 한국·중국에 이어 3위로 밀려났지만 50%에 달했던 세계 조선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은 조선업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기능 교육과 외국인 인재를 확대하며 로봇 자동화도 투자하고 있다”면서 “일본 산업용 로봇 기업 화낙은 이미 3년 전 조선소 요청에 따라 조선 용접에 투입할 수 있는 중량 11kg의 경량 협동 로봇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한국이 차세대 연료 전환 시장에서도 기술 경쟁력을 앞세워 독주해온 만큼 단기적으로 우위가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는 신중론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정부·해운·조선을 하나로 연결하는 ‘올재팬’ 구조를 가동한 만큼, 미국의 마스가 전략과 보조를 맞출 경우 향후 경쟁 국면은 지금보다 복잡해질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의 프리미엄 전략이 당장 흔들릴 가능성은 낮지만 일본이 기술 재건과 정부 지원을 총동원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경쟁 구도가 변화할 수 있다”며 “기술 초격차를 강화하고 해양·에너지 부문까지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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