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검머외'의 꼼수와 책임에 관대한 나라의 수치 [데스크 칼럼]

지봉철 기자 (Janus@dailian.co.kr)

입력 2025.12.04 11:20  수정 2025.12.04 12:29

자본엔 약하고 책임엔 관대한 나라, 그 허점을 파고든 김범석·윤관

이익 앞에선 한국인, 책임 앞에선 외국인…기묘한 국적의 분리술

김범석 쿠팡 의장과 윤관 BRV 대표ⓒ데일리안 박진희 디자이너

▲ "한국은 자본에 지나치게 약하고 국적과 형식 논리에 무력하며, 실질적 책임엔 관대한 나라다."


누군가의 자조 섞인 이 말이 요즘처럼 실감 나는 적이 있었을까. 최근 두 '검머외'(검은 머리 외국인)의 행동을 보며 격하게 분노하고 공감한 국민도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김범석 쿠팡아이앤씨(Inc) 의장과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 그들은 한국 시장에서 얻은 이익은 가져가면서 문제가 터지자 해외 국적과 외국 법인을 방패 삼아 책임을 피했다. 성인 국민 4명 중 3명에 해당하는 개인정보가 유출돼도, 수백억원의 역외 탈세 의혹이 제기돼도 검머외라는 껍질 안에 숨었다.


▲ 쿠팡의 실질적 총수인 창업주 김범석 의장은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새어 나간 재난 수준의 상황인데도 미국 국적과 해외 본사를 내세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미국 이민자인 김 의장은 의결권의 70% 이상을 가지고 있지만, 국회 출석 요구가 있을 때마다 해외 체류 등을 이유로 참석을 피하고 있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택배기사 과로사, 배달 앱 운영상 불공정거래 의혹, 입점 수수료 등의 문제로 증인 채택됐지만 '외국 거주 중'이라는 이유 등으로 두 차례나 불출석했다. 쿠팡 매출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거두고 국내 소비자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면서도 사회적 책임과 내부 통제 측면에서는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모국 국민을 상대로 자본의 달콤한 이익만 챙기고 책임을 외면하는 건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LG 오너 일가의 사위라는 지위를 지닌 채 역외 탈세 의혹 앞에선 '비거주자'라는 논리로 납세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 국세청은 윤 대표의 자금 대부분이 국내에서 나왔고 투자처의 80% 정도가 국내라며 2021년 12월 윤 대표에게 해당 종합소득세 123억7758만원을 추징했다.


그러나 윤 대표는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이자 국내에서 183일 미만 거주한 비거주자라며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다투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돈을 벌 때는 한국 사람, 세금을 낼 때는 미국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또 소득세 관련 행정소송 과정에서 유명 연예인 부인에게 10년간 경제적 지원을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구설에 올랐고 아내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에 미공개 정보를 제공한 후 선행매매한 주식으로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다. 한 기업인이 여러 이슈로 이렇게 논란이 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런 이유로 윤 대표 역시 올해 국정감사 출석 요구를 받았지만, 김 의장과 마찬가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김범석 의장, 윤관 대표 두 사람 모두 한국 사회가 가진 구조적 약점을 정확히 짚고 파고든 셈이다.


이런 행태는 단순한 도덕 문제를 넘어선다. 한 번 선례가 생기면 '국적 쪼개기', '지배·책임 분리'는 곧 매뉴얼이 된다. 그렇게 쌓인 관행은 세무·노동·안전·소비자 보호를 모두 뚫는 '왕도'(王道)가 되고 공정 경쟁을 믿고 뛰어든 국내 기업과 노동자만 손해를 본다.


여권에 찍힌 국적이 무엇이든, 국내에서 실질적 거주와 영업을 하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세금과 법적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것이 상식이다.


한국이 앞으로도 '자본에 약하고 책임엔 관대한 나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돈과 책임이 함께 머무는 나라'가 될 것인지. 답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그 상식을 제도와 집행으로 옮길 국민적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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