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만화 몰락기에 디지털 기반 '웹툰' 탄생
'만화광'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가 사업 주도
'요일웹툰·도전만화·미리보기' 모델 선보이며
서비스 정착·생태계 강화 주도…산업 성장 주역
조석 작가의 네이버 인기웹툰 '마음의 소리'에 등장한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 ⓒ네이버웹툰
만화를 디지털 환경에서 세로로 스크롤해 감상하는 '웹툰(웹+카툰)'이라는 형식은 한국에서 처음 탄생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주요 만화 잡지들이 잇따라 폐간하며 연재 플랫폼이 사라지자, 작가들은 개인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작품을 올리며 새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이 흐름의 대표적인 선구자가 강풀 작가다. 작가들의 온라인 연재를 눈여겨본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포털사는 비포털 경쟁력 확보를 위해 웹툰 사업에 속속 뛰어들었다.
네이버가 웹툰 서비스를 정식 오픈한 시점은 정확히 20년 전인 2005년 12월이다. 20년 전 신입사원이던 김준구 대표가 이를 주도했다. 그는 만화책만 9000권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소문난 '만화광'이었다.
당시 만화 산업은 '출판 만화의 몰락기'로 표현될 만큼 침체돼 있었고, 연재처를 잃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네이버의 실험은 빠르게 주목받았다. 다만 초창기만 해도 출판 만화를 스캔해 전용 뷰어로 넘기며 보는 수준에 그쳤다.
네이버웹툰은 서비스 정착을 위해 '요일웹툰'이라는 포맷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웹툰을 이용자의 일상 속 리듬에 녹여 넣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김 대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만화 생태계를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종이 만화를 디지털로 옮기는 방식은 한계가 있고, 온라인 환경에 최적화된 창작물의 필요성을 고심했다.
개방형 플랫폼 '도전만화'로 생태계 확장 실험… 창작 저변 확대
그 고심의 산물이 2006년 1월 등장한 '도전만화'다. 누구나 자유롭게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개방형 웹툰 창작 플랫폼으로, 본격적으로 '창작 진입 장벽을 낮추는 생태계 실험'이 시작됐다. 소재가 익숙하든 신선하든 가리지 않고 신인 작가들이 독자와 만나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웹툰 저변이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조석의 '마음의 소리', 손제호·이광수의 '노블레스', 지강민의 '와라! 편의점' 등 히트작들이 연달아 발굴되며 웹툰 서비스는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 현재 도전만화는 웹툰 작가를 꿈꾸는 이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마추어 작가가 독자를 만나고, 피드백을 통해 프로 작가로 성장하는 여정이 네이버웹툰 안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당시 김 대표는 직접 발로 뛰며 작가들을 섭외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규삼, 손제호, 조석, 기안84 등 지금의 스타 작가들이 모두 김 대표가 직접 영입한 인물들이다. 기안84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준구 형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못 살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플랫폼 특성상 다채로운 콘텐츠 확보가 체류시간을 늘리고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핵심 요소인데, 김 대표는 작가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곧 콘텐츠 다양성, 플랫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선순환 구조를 일찍이 확신했다.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네이버웹툰
네이버웹툰은 2008년 '베스트도전'을 도입했다. 도전만화에서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베스트도전으로 승격하고, 이후 인기를 얻으면 내부 심사를 거쳐 정식 연재로 이어지는 구조다. 독자 입장에서는 신선한 아마추어 작품부터 완성도 높은 프로 작가의 작품까지 한 플랫폼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이후 2009년 아이폰 등장과 함께 스마트폰 보급률이 빠르게 상승하자, 네이버웹툰은 모바일 시대에 맞춰 웹툰 전용 앱을 출시했다. PC 중심이던 감상 환경이 휴대폰으로 확장되면서 '언제 어디서든 보는 콘텐츠'라는 웹툰의 본질적 강점이 극대화됐다.
웹툰 작가도 직업이다…창작자 수익모델 다각화로 '건물주 작가 시대' 개막
네이버웹툰이 업계 판도를 뒤흔든 분기점으로 평가되는 것은 2012년 최초로 '미리보기' 유료화 모델을 도입하면서다. 이 역시 김 대표가 주도했다. 작가들이 창작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됐다. 작가들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담당자였기에 가능한 시도다. 기존 플랫폼 원고료 중심의 수익 구조에 머물렀던 작가들에게 안정적 수익원을 제공하고, 작품 활동 지속성을 높인 획기적 결정이었다.
특히 플랫폼보다 작가에게 더 많은 수익을 배분하는 파격 구조를 도입하며 다수의 작가들이 네이버웹툰으로 모여들었다. 미리보기 도입은 네이버웹툰이 본격적인 수익 모델 다각화의 출발점이 된 사건이기도 했다.
스마트폰 보급률 확산과 맞물리며 웹툰 기반 영화화도 활발해졌다. 이미 독자 검증을 거친 웹툰을 원작으로 삼으면 영화 제작 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과 함께'를 시작으로 '패션왕', '고삼이 집나갔다' 등 웹툰 영화화 사례가 늘었다. 창작자 수익 구조가 단순 콘텐츠 유료화에서 벗어나 IP(지식재산권) 2차 비즈니스로 확장된 시점이다.
김 대표는 이를 체계화해 '창작자 수익 다각화 모델(PPS)'을 고안했다. 웹툰 유료 판매, 광고 수익 배분, IP 2차 판권 사업 등이 정교하게 구축되며 웹툰 작가가 정식 직업으로 인정받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른바 '건물주 웹툰 작가'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네이버웹툰은 한국에서 태동한 웹툰이 하나의 완결된 산업으로 자리잡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한 플랫폼 사업을 넘어 창작 생태계 구축, 작가 수익 안정화, IP 비즈니스 확장 등 웹툰 산업의 구조적 기반을 만드는 것을 주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난지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교수는 "누구나 웹툰을 창작해 선보일 수 있는 창작생태계를 제공하며 시작된 네이버웹툰의 여정은 수익 다각화, 글로벌 진출, IP 확장 등의 모험을 통해 무르 익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