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국장 블랙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다. 전 세계가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에게 환호할 때, 그들 위로 100km 상공 달 궤도에는 홀로 사령선을 지키던 한 남자가 있었다.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고독한 시간을 보냈던 우주비행사, 마이클 콜린스의 시선으로 기록된 드라마다. 작품은 화려한 성취의 기록 뒤편에 가려져 있던 ‘기다림’과 ‘책임’의 가치를 조명한다.
ⓒ컴퍼니연작
극은 노년의 마이클 콜린스가 생의 끝자락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시작된다. 무대는 아폴로 11호의 좁은 사령선 내부와 광활한 우주를 오간다. 달의 뒷면으로 진입할 때마다 마이클은 지구와의 통신이 완전히 차단되는 ‘암흑의 시간’을 통과한다. 빛도 소리도 없는 우주에서 홀로 궤도를 도는 이 설정은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고립을 상징한다. 그러나 작품은 이 고독을 비극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90분간 무대를 홀로 채우는 배우 정문성은 이 작품의 서사를 완성하는 핵심이다. 1인극은 배우의 역량에 따라 몰입도가 결정되는데, 정문성은 수식어가 필요 없는 정교한 연기로 관객을 우주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마이클 콜린스라는 인물의 중심을 단단히 잡으면서도, 닐, 버즈, 에드 등 극에 등장하는 4인의 캐릭터를 무대에 실재하게 만든다. 인물 간의 전환은 매끄럽고, 각 배역의 특징을 과장 없이 짚어내는 그의 연기는 극의 밀도를 높인다.
특히 정문성이 표현하는 마이클의 내면 묘사가 인상적이다. 그는 동료들이 달을 밟는 동안 사령선을 지켜야 하는 이의 복잡한 심경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질투나 아쉬움보다는 자신이 맡은 임무에 대한 경건함과 동료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간절함을 절제된 호흡으로 표현한다.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안으로 눌러 담는 그의 연기 방식은 마이클 콜린스가 견뎌온 고독의 무게를 더욱 묵직하게 전달한다.
ⓒ컴퍼니연작
음악적 구성 또한 정문성의 음색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넘버들은 화려한 기교보다는 인물의 고백에 집중할 수 있는 서정적인 선율 위주로 배치되어 있다. 정문성은 가창에서도 기교를 덜어내고 텍스트의 전달에 주력한다. “내 발자국이 달 위에 남겨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가사는 그에 의해 패배자의 자조가 아닌, 자신의 궤도를 묵묵히 지켜낸 인간의 긍지로 치환된다. 그가 부르는 노래들은 90분의 시간을 채우는 음악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관객에게 깊은 사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단출한 소극장의 무대 연출은 기술력으로 극복했다. LED 영상과 조명을 활용해 구현한 우주 공간은 정문성의 연기와 결합하여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 좁은 콕핏 안에서 마주하는 지구의 모습과 달의 뒷면이 지닌 어둠의 대비는 마이클 콜린스가 느꼈을 경외감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전달한다.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은 결국 모든 이들이 주인공이 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헌사다. 세상은 달을 밟은 발자국만을 기억할지 모르지만, 그 발자국이 남겨질 수 있도록 궤도를 이탈하지 않았던 마이클 콜린스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정문성은 이 고독한 우주비행사의 삶을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궤도를 도는 우리 삶 역시 충분히 아름답다는 위로를 건넨다. 가장 고독한 공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렇게 가장 따뜻한 확신으로 마무리된다. 공연은 2026년 2월 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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