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 경쟁에서 설득 경쟁으로… CES 앞 전자업계의 전략 변화
ⓒ데일리안 AI 이미지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를 앞두고 전자업계의 고민은 어느 해보다 복잡해졌다. 기술은 분명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그 진화가 곧바로 소비자의 '교체'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TV, 가전 대부분은 이미 일상에서 불편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성숙 단계에 들어섰다. 고장이 나지 않는 한, 바꿔야 할 이유를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신제품이 없어서가 아니다. 매년 CES 무대에는 더 얇아진 TV, 더 선명해진 디스플레이, 더 똑똑해진 가전이 등장한다. 다만 문제는 소비자의 반응이다. "좋아졌다"는 평가는 나오지만,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간극 속에서 전자업계가 내놓은 공통 해법이 인공지능(AI)이다. 하드웨어 차별화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경험의 변화를 통해 교체 명분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AI 카메라, AI TV, AI 가전, AI 홈까지 이제 CES에서 AI를 빼놓고 제품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AI 역시 만능 해법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대다수의 AI 기능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도 구현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새 제품이 아니어도 쓸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진다. AI를 강조할수록 기술의 진보는 느껴지지만, 교체의 필요성은 오히려 희미해지는 역설이 나타난다.
전자업계가 마주한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AI를 빼면 뒤처진 제품처럼 보이고, AI를 넣어도 교체는 일어나지 않는다.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위축되고, 가격을 유지하면 수익성이 압박받는다.
그래서 CES는 단순한 신제품 공개 무대를 넘어, '브랜드 설득의 무대'가 되고 있다. 얼마나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느냐보다, '왜 지금, 우리 제품으로' 바꿔야 하는지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설명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하드웨어 성능 경쟁에서 경험과 맥락의 경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셈이다.
전자업계가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불만이 아니다. 불만은 개선의 출발점이지만, 신제품을 보고도 고개만 끄덕이는 반응이 반복되면 시장은 정체된다. CES에서 쏟아지는 기술들이 '관심'에서 '구매'로 혹은 '브랜드 신뢰'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 답을 찾는 것이 내년 전시의 숨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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