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빈 방문의 격식 갖춘 중국
문재인 정부로부터의 복원 아닌가
중국이 이재명 대통령을 대접하는 '밀당'의 법칙
북한을 대하는 패턴, ‘미국보다 한발만 가까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이 대통령 공식환영식이 끝난 뒤 어린이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공동취재 제공
국빈 방문의 격식 갖춘 중국
중국이라는 까다로운 상대를 앞에 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새해 벽두 첫 외교 일정을 별 탈 없이 소화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베이징 방문이 '국빈 방문(State Visit)'임을 유독 강조하는 눈치다. 따져보니 한·중 수교 이후 노태우 대통령을 기점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모든 정부가 임기 중 한 번은 국빈 대접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방문 이후 무려 9년 만에 다시 차려진 국빈 상차림인 셈이다.
공항 영접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장관급인 인허쥔(阴和俊) 과학기술부장이 마중을 나왔다. 차관보급 인사가 나와 '혼밥 홀대론'을 자초했던 과거의 민망한 장면을 씻어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시진핑 주석은 인민대회당에서 공식 환영식을 열고 90분간 머리를 맞댔다. 물론 시 주석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서 정확한 전략적 선택을 하라"며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환영 만찬을 베풀며 '국빈의 격'은 꼬박꼬박 챙겨주었다. 속은 쓰려도 겉으로는 예우를 갖춰야 하는 비즈니스 관계의 전형이다.
문재인 정부로부터의 복원 아닌가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방중의 의미를 '한중 관계의 전면 복원'이라 정의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뒤틀렸던 관계의 복원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 가장 박한 대접을 받은 건 단연 문재인 정부였다. 3박 4일간 열 끼 중 여덟 끼를 중국 측 인사 없이 한국 측끼리, 혹은 현지 식당에서 해결해야 했던 '혼밥 논란'은 외교사에 남을 진풍경이었다. 한국 기자들이 중국 보안요원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왕이 외교부장이 대통령의 팔을 툭툭 치는 결례를 범해도 우리는 침묵해야 했다. (심지어 왕이 부장은 2020년 청와대 접견실에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긁어놓았다.)
중국은 우리의 사드(THAAD) 도입을 트집 잡아 '3불 1한'을 강요하며 안보 주권을 침해했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MD(미사일 방어체계) 편입 불가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라는 '3불'과, ▶기존 사드 운용을 제한하라는 '1한'의 압박이었다. 이를 두고 2017년 국정감사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중국이 우려하는 세 가지 사항에 대한 정부의 기본 입장을 확인해달라"는 박병석 의원의 질의에 수용 의사를 밝히며 굴욕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기억이 선명하다.
필자가 이번 방문의 의전 상황만 시시콜콜 나열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알맹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4건의 MOU가 체결됐다지만, 언론은 석사자상 한 쌍 반환이나 판다 대여 마릿수 늘려달라는 대통령의 제안을 열심히 다뤘다. 외교 안보의 묵직한 전략적 성과 대신 동물원 이야기만 가득했다는 건, 이번 회담의 본질이 '전략적 합의'보다 중국의 '전략적 관리'에 있음을 시사한다. 미·중 간의 치열한 신경전과 다이치 일본 총리 취임 이후 악화일로인 일·중 관계 속에서, 그저 큰 사고 없이 일정을 마친 것 자체 정도를 평가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중국이 이재명 대통령을 대접하는 '밀당'의 법칙
사실 중국은 속이 뒤집혔을 것이다. 2025년 10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한·미 공동 팩트시트'는 가히 전방위적인 중국 포위망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이야 상수로 치더라도, 핵추진 잠수함, 조선 협력, F-35 추가 도입, 그리고 2030년까지 33조원 규모의 군사장비 구매 약속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여기에 AI, 6G, 바이오, 양자, 우주 등 5대 핵심 기술 공급망까지 미국과 손을 잡았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협력 체제가 이재명 대통령의 표현대로 '비자발적으로 구축 당했다'라는 사실이다. "버티기로 손실을 최소화했다"는 대통령의 기자회견 소회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결국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에 강제로 동원된 결과라는 뜻인데, 바로 이 '비자발적 밀착'이 중국이 한국을 대접하게 만든 아이러니한 배경이 되었다.
과거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의 역학(dinamics)을 보면 패턴이 있다. 중국은 한·미 관계의 거리에 따라 한·중 관계의 온도를 조절해 왔다. 한국이 미국과 10m 가까워지면 중국은 11m 거리까지 쫓아오고, 한국이 미국과 1000m 멀어지면 중국은 1100m 밖에서 무심하게 구는 식이다.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갈구했던 노무현 정부는 외면하더니, 오히려 미국 편중 외교라고 비판받던 이명박 정부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것이 좋은 예다. 윤석열 정부 시기, 핵전략 공유를 발표한 '워싱턴 선언' 직후 중국 관광객이 대거 입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대로 미국과 사이가 소원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중국의 홀대 논란 역시 이 패턴 안에서 설명된다.
북한을 대하는 패턴, ‘미국보다 한발만 가까이’
중국의 이런 '간 보기' 공식은 북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김정은 위원장 취임 후 3년간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설이 돌자마자 몸이 달았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3월 시진핑은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불러 첫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에 북한을 뺏길까 봐 부랴부랴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미국보다 딱 한 발자국만 더 가깝게 있겠다는 전략적 본능이다. 이후 두 번 더 개최된 미·북 정상회담 전후로 4차례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9년 6월 시진핑은 평양을 처음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9년 이후 미국의 관심에서 멀어진 북한이 무엇을 하던 중국은 데면데면하게 시간을 보내왔다. 지난해 항일전쟁 승리 80주년 열병식을 계기로 회담이 열리긴 했으나, 26개국 정상을 들러리 세워 북·중·러 '권위주의 삼각 협력'이라는 사진 한 장 찍는 것이 목적이었을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소회처럼, 힘센 강자에게 떠밀려 구축 당한 한미 협력 체제는 역설적으로 중국에 강력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국을 아무리 자기편으로 끌어당겨도 미국보다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것을 중국도 잘 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겐 당당하게 중국을 상대할 전략적 환경이 오히려 마련된 셈이다. 진짜 실용 외교는 '양다리'를 걸치는 비굴함이 아니라, 우리의 높아진 몸값을 묵직하게 활용하며 국익을 늘여가는 '밀당'의 기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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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인배 전 국립통일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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