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은 분노를 집행하는 처형대가 아니다 [기자수첩-사회]

어윤수 기자 (taco@dailian.co.kr)

입력 2026.01.19 07:00  수정 2026.01.19 07:06

이틀로 쪼개진 尹 비상계엄 본류 결심공판

언론서 '법정 필리버스터' 등 비판 쏟아져

지귀연 부장판사(왼쪽)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하기 위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으로 들어오고 있다. 2025.04.21.ⓒ사진공동취재단

전직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1996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재판 이후 30년 만이다. 특검은 사형을 구형했고, 언론은 일제히 지면을 통해 피고인의 태도를 꾸짖었다. "국민 모독" "침대 축구" "볼썽사납다" 등 헤드라인에 '법정 필리버스터'라는 수식어까지 등장했다. 흡사 거대한 여론의 단죄장을 연상케 했다. 이 대목에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법정은 분노를 대리 집행하는 처형대인가,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이성의 공간인가.


다수 언론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의 8시간 구두 변론을 '지연 술책'이라 규정했다. 그러나 실익의 관점에서 따져보면 사형이 구형되는 중범죄 재판에서 몇 시간의 변론 연장이 판결 결과에 유의미한 변수가 되기는 어렵다. '결심 단계'에서 재판을 며칠 늦춘다고 혐의가 사라지거나 법리적 결론이 뒤집히지도 않는다. 피고인의 유불리를 떠나 허용된 절차적 권리를 소진하는 과정이자 헌법상 방어권이 법정에서 구현되는 물리적 시간일 뿐이다.


특검팀이 방대한 기록으로 피고인을 압박한 시간은 필요한 공무였다. 반면 피고인이 자신을 소명하기 위해 쓴 시간은 꼼수로 치부됐다. 엄중한 사건일수록 소명 권리를 철저히 보장해 논란의 여지나 절차적 흠결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결말이 정해졌으니 절차를 생략하라는 압박은 법치의 논리가 아니다. 방어권 행사를 지연으로 치부하는 것은 "입 닫고 판결을 수용하라"는 국가주의적 발상과 맞닿아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사법부를 향한 언론의 압박이다. 재판부가 법리에 따라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을 두고 '사법 참사'라 몰아붙이는 행태다. 법관이 여론에 맞춰 판결봉을 두드려야 한다고 믿는다면 사법 독립은 부정된다. 재판부가 지켜야 할 것은 법적 절차의 정당성 그 자체다.


분노가 판결을 대신할 수는 없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시시비비는 법과 원칙에 따라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론을 정해놓은 재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언론이 한 방향으로 달릴 때, 그 질주가 법치주의를 밟고 지나가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역사는 피고인의 죄목뿐만 아니라, 그를 심판했던 우리 사회의 이성적 온도 역시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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