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커뮤니티서 번진 ‘경찰과 도둑’ 놀이
골목 놀이 경험 없는 세대에겐 '新 경험'
플랫폼을 통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Z세대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효창공원에서 '경찰과 도둑' 모임이 열렸다. ⓒ데일리안 남가희 기자
오늘의 주제는 '아이템(물건)'이 아니다. MZ세대가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당근'의 동네 커뮤니티 게시판을 이용해 '경찰과 도둑(경도)' 모임을 하는 것이 인기다. 실제 당근에 '경찰과 도둑'을 검색하면 여러 개의 방들이 나온다. 많게는 2000명까지 모인 방도 존재한다. 모임은 주최자가 일정을 정해 시간과 장소를 공지하면 참가자들이 신청해 참여하는 방식이다.
3개 이상 모임이 연합해 ‘연합 경도’를 진행하기도 한다. 많게는 수백 명이 한자리에 모여 경기를 치르며, 푸짐한 경품도 걸리기도 한다.
이에 Z세대의 새로운 놀이 방식을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기자는 지난달 16일부터 당근마켓을 통해 여러 경도 모임에 접촉했지만, 영하 10~15도를 오가는 추위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부담에 한 차례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이후 지난달 23일부터 다시 시간과 장소가 맞는 모임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한 주최자가 용산 효창공원에서의 모임을 공지했고, 이를 통해 마침내 ‘경찰과 도둑’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약속 시간과 장소는 1월26일 오후 7시 효창공원이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내내 고민이 깊어졌다. '안전한 게 맞을까', '이상한 사람이 나오는 게 아닐까'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그렇게 걱정하다 보니 어느덧 경도가 열리는 효창공원에 다다랐다.
현장에는 총 13명이 모였다. 대부분이 앳된 학생들이었다. 이들의 나이는 10대~20대 초반 정도로 형성돼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참가자들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며 서로를 살폈다. 처음 만난 사이도 있었지만, 이미 수차례 해당 모임에 참석해 본 이들도 존재했다.
처음 만난 사이도 있는 만큼 대화는 조심스러웠지만, 준비를 기다리는 동안 분위기는 조금씩 풀어졌다.
그렇게 몇 마디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경도가 시작됐다. 주최자는 참가자들을 모아 간단한 게임 룰과 주의사항을 설명하며 본격적인 진행에 들어갔다.
첫 놀이는 '얼음땡'이었다. '얼음땡'은 술래에게 잡힐 때 ‘얼음!’을 외쳐 멈추고, 다른 친구가 ‘땡!’을 외치며 가볍게 터치해 다시 움직이게 하는 놀이다.
7시 10분경 첫 놀이 '얼음땡'이 시작됐다. 술래들이 빠르게 움직이자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오랜만에 해보는 추억의 놀이라 규칙이 잠시 가물가물했지만, 몇 번 뛰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억이 되살아났다.
당근마켓을 통해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함께 할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는 모습. ⓒ당근마켓 캡쳐
게임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전개됐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오후 7시 23분경, 결국 술래에게 붙잡혀 ‘얼음’ 신세가 됐다. 누군가의 '땡' 외침에 잠시 자유의 몸이 되기도 했지만 끝내 다 잡히며 술래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얼음땡 게임을 두 차례 치른 뒤, 본게임인 ‘경찰과 도둑(경도)’이 시작됐다. 술래는 총 6명. 기자 역시 술래로 이름을 올렸고, 그중에서도 감옥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붙잡힌 도둑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자리였다.
게임 시작 전 도둑들에게는 약 5분간의 도주 시간이 주어졌다. 공원 곳곳으로 흩어진 뒤, 술래들의 추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도둑이 감옥에 끌려왔다. 이어 끈질긴 추격 끝에 남성 도둑 한 명이 추가로 연행됐다. 감옥 앞은 잠시 안도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추가로 도둑을 생포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방심한 순간 감옥에 있던 도둑 한 명이 눈 앞에서 빠져나갔다. 한 눈을 판 사이였다. 순식간에 상황은 뒤집혔고, 결국 감옥에는 단 한 명의 도둑만 남았다.
결국 기자는 책임을 통감하고 감옥 지킴이 자리에서 물러나 일선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끝내 단 한 명의 도둑도 붙잡지 못한 채, 첫 판 경도는 허탈한 결말로 막을 내렸다.
첫 판이 끝났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뛰어다닌 게 언제였더라’였다. 승패나 결과를 따질 새도 없이, 어린 시절 골목에서 놀던 것처럼 그저 앞만 보고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이나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고, 게임은 시작과 동시에 깊은 몰입을 끌어냈다.
숨이 가쁠수록 묘하게 웃음이 났다. 스마트폰 화면 대신 공원 어둠 속을 바라보며 뛰는 이 시간 자체가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왜 이들이 낯선 사람들과 굳이 모여 ‘경찰과 도둑’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특별한 장비도, 복잡한 규칙도 없지만, 잠시나마 현실의 고민을 내려놓고 몸을 움직이는 경험 자체가 이 모임의 이유였다.
중간 중간 모르는 이들과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나름대로의 힐링 포인트였다. 직장인으로서의 생각과 취준생으로서의 고민 등을 서로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이날 함께 게임을 치른 이들에게도 '왜 이 모임에 참가하게 됐는지'를 물어봤다.
모임을 주최한 20대 참가자는 "다른 방을 통해서도 참여를 해봤는데 모임만 기다려서는 제가 원하는 때에 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직접 주최를 하게 됐다"며 "막상 해보니 재미도 있고 방학이라 심심해서 하다 보니 (놀이에) 빠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취업을 준비 중이라는 한 참가자는 "우연히 당근 거래를 하다가 모임을 접하고 재밌을 것 같아서 처음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눈에 띈 점은 일부 10대 참가자들의 말이었다. "저번 주부터 거의 매일 나오고 있다"고 밝힌 그는 "어릴 때 이런 놀이를 해본 적이 없다. 집에 있으면 계속 핸드폰만 보게 되는데, 여기 오면 몸도 쓰고 사람도 만나서 계속 나오고 있다"는 뜻밖의 답변을 내놨다.
스마트폰이 일상화 된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에게 ‘경찰과 도둑’은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는 놀이가 아니라, 오히려 새롭게 접하는 체험에 가까웠다. 골목에서 뛰놀 기회조차 충분히 누리지 못한 세대에게 경도는 복원이 아닌 발견이었던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과 모바일 환경에 가장 익숙한 세대가 오히려 오프라인에서의 즉각적인 반응과 신체적 감각을 갈구하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면서도 씁쓸하게 다가왔다.
화면 너머로 분절된 관계 대신, 같은 공간에서 숨을 고르고 함께 뛰는 경험이 새롭고 특별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성장해 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어쩌면 이들을 다시 골목으로 나서게 만든 배경에는, 너무 이르게 화면 속으로 들어가버린 일상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기자가 경험해 본 '경도' 모임은 놀이 그 자체라기보다, 온라인으로 흩어진 개인들이 다시 느슨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방식에 가까웠다.
한 경도 모임에 올라온 안전 가이드라인 공지. ⓒ당근마켓 캡쳐
다만 우려되는 지점도 분명 존재했다. 모르는 불특정 다수와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특성상, 안전 측면에서의 리스크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실제 기자가 참여한 경도 모임 공지에도 “신천지·단순 이성 목적·홍보 등 순수한 취지와 다른 참여자가 있을 수 있다”며 “피해 사례가 발생할 경우 신고를 부탁드린다”는 안내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이처럼 일정 수준의 위험이 동반되는 놀이인 만큼, 참여자 개인 차원의 주의는 물론, 플랫폼 역시 이용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를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이에 대해 당근 측은 경도를 비롯한 놀이 모임과 관련해, 모임 메인 페이지 내 안내 배너를 통해 안전한 모임 참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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