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배경음악 넘어 인물 심리를 직접 전달하는 장치
사막 한가운데, 테크노 음악이 울려 퍼지는 레이브 파티가 열린다. 거대한 스피커 앞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로,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이곳에 도착한 아버지 루이스(세르지 로페즈 분)와 아들 에스테반(브루노 누녜즈 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음악은 점점 커지고, 비트가 최고조에 이르던 순간, 지뢰가 터진다. 방금까지 흥겨웠던 축제의 장은 한순간에 생사의 경계인 지뢰밭으로 돌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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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아틀라스 산맥을 배경으로 독특한 연출 전략을 선보인 영화 '시라트'가 5만 관객을 돌파했다. 1만 관객만 넘어도 '흥행'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 독립·예술영화계에서 이 작품의 성과는 이례적이다. 친절한 서사 대신 소리를 스토리텔링 전면에 내세운 선택이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라는 입소문으로 이어지며 관객을 끌어모았다.
실종된 딸을 찾아 사막과 산맥을 건너는 아버지의 여정을 따라가는 '시라트'는,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소리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연락이 끊긴 딸을 찾기 위해 사막의 레이브 파티장을 헤매는 아버지 루이스와 아들 에스테반의 여정에서, 114분의 러닝타임 중 상당 부분을 이동과 대기에 할애한다. 일반적인 상업영화 문법으로 보면 정적인 로드무비에 머물 수 있는 이 공백을 떠받치는 것은 바로 압도적인 테크노 사운드와 EDM 비트다.
이 영화에서 소리는 배경음악을 넘어 인물 심리를 직접 전달하는 핵심 장치다. 사막 한가운데 성벽처럼 쌓인 대형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비트는 인물의 불안과 공포를 관객 귀로 직접 전달한다. 대사가 생략된 자리에 들어앉은 전자음은 때로 인간을 관조하는 절대자 시선처럼 작동하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한 자연 풍경과 충돌하며 독특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사막과 산맥이라는 시각적 공간 뒤편에서 울려 퍼지는 비트는 인간 존재를 풍경 속으로 밀어 넣고, 바람 소리와 전자음, 발소리와 음악의 경계가 점점 흐려진다. 여기에 후반부 인물들이 보여주는 몸부림과 침묵은, 음악이 이끄는 하나의 의식처럼 읽히며 영화의 정서를 완성한다.
이 영화가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평가를 얻는 이유 역시, 이러한 음향의 층위가 극장이라는 공간에서만 온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시라트'는 2024년 개봉해 20만 관객을 돌파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이 작품은 홀로코스트라는 이미 재현돼 온 역사적 비극을 철저히 소리로만 전달하며, 화면 밖에서 들려오는 기계음과 비명, 일상의 소음으로 상상력을 자극했다. 직접적인 묘사를 배제한 선택은 오히려 더 강한 공포와 몰입을 만들어냈다.
흥행 배경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시라트'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 모두 국내에서 해외 예술영화를 꾸준히 소개해 온 소지섭과 찬란이 수입을 맡았다. 이들은 지난 2014년 '필로미나의 기적'을 시작으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유전', '미드소마' 등 독창적인 색깔을 지닌 외화들을 꾸준히 소개해 왔다. 특히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누적 20만 명을 기록하고, '서브스턴스'가 5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취향 장벽을 넘어서는 흥행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이 밖에도 '악마와의 토크쇼', '썸머 85', '그린 나이트' 등 평단과 관객의 고른 지지를 얻은 작품들이 이들의 손을 거쳤다. 단발성 화제성보다 큐레이션의 신뢰를 쌓아온 배급 전략이 있었기에, 사운드 중심이라는 낯선 형식에도 관객은 기꺼이 극장을 찾았다.
찬란 이지혜 대표는 "칸에서 '시라트'는 경쟁에 오른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대작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스크리닝을 하고 예측불허의 충격적인 전개, 몸으로 그대로 전달되는 강렬한 사운드와 음악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 삶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 등이 균형 있게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다"라며 "최근 관객 트렌드가 극장용 영화를 선별하고 체험형 관람을 지향하며 화제성과 완성도, 재미까지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기에 그런 경향에 맞는 작품이라 판단했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시라트'를 수입한 이유를 밝혔다.
'시라트'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흥행은 자극적인 이미지와 빠른 편집이 범람하는 동시대 관람 환경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 읽힌다. 짧은 클립 소비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2시간 안팎의 러닝타임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워진 시대에, 두 작품은 오히려 시각적 정보를 최소화하고 소리를 전면에 배치하는 선택으로 관객을 극장 좌석에 붙잡아 둔다. 보고 이해하는 대신, 듣고 견디게 만드는 방식이다. 정보를 덜어내고 청각에 집중하게 만든 이 전략은, 영화적 체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고관여 관객층의 감각을 정확히 겨냥했다는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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