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판결 받고 ‘도륙’ 주장한 조국
당 대표부터 비상탈출에만 관심
정 대표 합당 포기가 정답일 텐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 빈소에서 상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총리 등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국혁신당(曺國)이 아니라 ‘祖國을 혁신하는 정당’을 표방했다. 자기 과시욕이 유난히 넘쳐 보이는 사람이 그 뜻으로 이름 지었을 것 같지는 않다. ‘내 정당’이라고 말하고 싶어서였으리라 추측된다. 그런데 ‘내 조상의 나라이고 내가 태어나 자란 나라’로서의 조국을 가리키는 당명이었다고 인정한다 해도 생각할수록 고약하다. 정치를 개혁한다는 뜻의 ‘정치개혁당’이라면, 아주 식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가 보다 해 주겠는데 조국을 혁신하겠다니! 조국이 뭘 잘못했다고?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면 부끄럽고 미안한 표정이라도 지을만한데 그는 더 고개를 쳐들고 자기과시에 열을 올렸다. 마치 ‘조국의 해방’을 이끈 독립투사나 된 양하는 행태였다. 대법원으로부터 부부가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가족이 ‘도륙’을 당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과 검찰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도륙(屠戮)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사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검찰과 사법부가 도살자라는 뜻이었을까? 그건 윤 전 대통령이나 검찰, 법원이 아니라 자신의 조국에 모욕을 안긴 것이다.
유죄판결 받고 ‘도륙’ 주장한 조국
그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대중적 호응이 있었고, 그에 힘입어 2심에서까지 징역형을 선고받은 처지였음에도 정당 창당·총선 출마를 강행했다. 확정판결이 나기 전엔 ‘무죄’로 간주한다는 ‘무죄추정 원칙’에 기댄 것인데, 정치를 희화한 책임까지 면해질 것은 아니다.
그의 정당은 총선에서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인가 하는 해괴한 선거법의 도움으로 12석을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지역구 후보는 아예 내지 않고 오직 비례대표만 겨냥한 정당이었다. 그의 피해자 주장에 대한 동조, 우파 정당에 대한 반감, 민주당에 대한 실망에다 격려와 신원(伸冤)의 심리가 더해졌겠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거 결과였다. 범법자에 열광하는 대중(일부이긴 했지만)에게 정치적·사법적 정의는 무엇일 수 있는지, 국민 가운데 일부는 인식의 혼란을 심하게 겪어야 했다.
결국 조 대표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가족이 ‘도륙’을 당했다는 주장을 거두지 않았다. 그게 자신의 확신이라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가족, 그리고 계엄선포 연루자들의 처지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들 역시 경찰·공수처·검찰(특히 특검)의 무리하고 의도적인 수사의 피해자, 정치적 희생자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변호에 그처럼 열정을 다했으면 다른 억울한 사람들을 위한 변론에도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이 법학자로서 양심에 따르는 길이라고 여겨지는데 조 대표의 생각은 어떨까.
통치 세력의 정치적 전위대, 혹은 비호세력으로서가 아닌 신생정당에는 정착하기에, 참으로 척박한 것이 한국의 정치 토양이다. 처음엔 성공적으로 데뷔한 정당도 정착하는 데는 실패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주도로 창당됐던 통일국민당은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31석(지역구 24명, 전국구 7명)을 확보하며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그해 12월의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주영 후보가 낙선한 후 소속 의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국민당은 소멸해 버렸다.
당 대표부터 비상탈출에만 관심
2016년 안철수가 창당을 이끌었던 국민의당은 그해 4월 제20대 총선에서 호남 지역구 28곳 가운데 23곳을 휩쓸었다. 전통적인 더불어민주당 텃밭에서 대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국민의당은 수도권에서 2석을 보탰으며, 정당 득표율에서는 민주당을 제치고 2등을 차지했다. 일약 38석의 중(中)규모 정당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다음 해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득표율 3위로 낙선하면서 당은 소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들 두 정당은 지역구 의석을 주력으로 가졌음에도 정체성이 모호했던 데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다. 소속 의원들도 이념적·동지적 연대 의식이 아니라 국회 진입을 위해 모여든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이들 정당은 나름의 정치적 구호와 지역적 기반, 그리고 나름의 창당 명분을 갖고 있었다. 그랬음에도 단명을 면치 못한 것이다.
조국혁신당은 조 대표 자신의 법적·정치적 신원 및 재기를 위한 전진기지로써 구상·성립된 정치조직이라는 인상이 짙다. 장기적 존속·발전의 계획이나 비전이 있었던 것 같지가 않다. 준 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난해한 선거제도와 비례대표용 위성 정당들의 등장이라는 선거환경에서 진입로를 발견한 조 대표는 모(母) 정당(본당)이 따로 없는 비례특화정당을 구상했고 그렇게 선거를 치러 당 후보들의 대거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비례대표도 국민의 대표임은 틀림없지만, 지역적 기반이 없는 정당에 ‘책임정치’를 기대하긴 쉽지 않다. 지역 대표성과 전국 대표성 가운데 한 축이 비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조국혁신당의 장래 전망은 회색이다. 정체성이 뚜렷하지 못하다. 그간의 정치적 실적으로서 뚜렷한 게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조 대표로서는 당의 존속 문제를 두고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해결책으로서는 민주당과의 합당이 최선이다. 당 대 당의 통합이 되고, 의석 12석의 기득권이 보장된다면 아주 수지맞는 거래가 될 수 있다. 조 대표 자신의 위상도 사뭇 달라질 것이다.
조 대표가 지난 8일 “설 연휴가 시작되는 13일 전까지 민주당의 공식 입장을 결정해 달라. (그때까지)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답변이 없으면 합당은 없는 것으로 하겠다”라고 말한 배경은 뭘까?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지난달 22일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어 합당을 제안해 놓고 당내에서 갑론을박만 벌이고 있는데 대한 불쾌감 표시였을까? 아니면 정 대표에게 힘을 보태주려는 민주당 압박용 발언이었을까?
정 대표 합당 포기가 정답일 텐데
10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은 좋지만, 지방선거 전 추진은 중단·보류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이어 이날 밤에 열린 최고위원회의는 ‘합당 제안 철회’로 결론을 냈다. 정 대표는 회의 후 이 사실을 발표하고 국민과 당원, 그리고 조국혁신당 당원들에게 사과했다.
정 대표는 지방선거 전 합당 제안을 철회하는 대신 양 당이 합당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선거 이후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통합을 추진하자고 제의했다. 조 대표는 오늘(11일)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당 자체를 ‘없는 것’으로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달리 뚜렷한 대안이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양 당의 셈법은 더 복잡해지게 됐다.
민주당은 혁신당이 지방선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주요 경합지역에서 국민의힘에 유리한 구도가 조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 신경 쓰일 것이다. 박지원 의원은 “조국혁신당이 서울·부산·대구시장 후보를 내는 상황도 상정해야 하고, 그런 경우 민주당이 불리할 수 있다”며 선거전 합당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5일 방송 인터뷰). 혁신당으로선 양보할 때 다른 지역을 할당받으려 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가 있다. 선거연대로 간다고 해도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오는 8월에 친청계의 지지와 지원을 등에 업고 당 대표 재선에 나설 민주당 정 대표로서는 지방선거 후에라도 합당을 추진할 결의에 차 있겠지만 상황 변화를 쉽게 점칠 수 없어 답답하게 됐다. 혁신당의 선거 성적이 좋아도 나빠도 합당의, 반길만한 동인이 되기는 어렵다. 혁신당이 약진하면 조건이 많아질 것이고, 참패하면 민주당 쪽에서 합당 기피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다.
어쨌든 정 대표와 조 대표의 당초 계산은 빗나갔다. 합당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을 놓친 것이다. 정 대표는 8월 전당대회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면 합당을 더 훗날로 미루는 게 바람직하다. 승리 전망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급조된 비례특화 정당과 결합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정치의 정도(正道)이다. 합당은 조국이라는, 윤리적 자기성찰의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이는 정치야심가에게 더 큰 활동의 무대를 만들어주는 대신 민주당의 정치적 도덕성은 포기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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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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