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내정 단계'?
김주애의 길, 김정일의 '빌드업' vs 김정은의 '속전속결’
13살 소녀와 '백두혈통'이라는 마법의 논리
북한 주민의 자유를 보장할 지도자는 없는가
지난 12일 베이징 차오양구 소재 주중 북한대사관 정문 옆 게시판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함께 등장한 사진이 게시돼 있다. 주중 북한대사관은 게시판에 중앙 메인 사진 1장과 양쪽에 각각 12장씩 총 25장의 사진을 새롭게 게시했다. ⓒ 연합뉴스
2026년 2월 12일, 설 연휴를 앞두고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국가정보원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를 두고, 기존의 '후계자 수업'을 넘어 '후계자 내정 단계'에 진입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13살 소녀가 일부 정책에 의견을 낸다는 첩보까지 더해졌으니, 정황상 후계자 확정이 임박했다는 신호로 읽기에 충분하다.
국정원의 '내정 단계'?
그런데 여기서 국정원이 사용한 용어가 사뭇 묘하다. '후계자 수업'은 리더로서 자질을 갖추기 위한 훈련 과정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후계자 내정 단계'에 진입했다는 표현은 어딘가 모호하다. '내정(內定)'이란 본래 결심이 선 상태를 의미하는 단일 행위이지, 계단을 오르듯 밟아 나가는 과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결심만 있다면 그 순간 내정은 완료되는 것 아닌가.
이는 아마도 정보당국이 만에 하나 있을 오차를 고려해 선택한 '조심스러운 수사'일 것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결국 이 용어는 '아직 공식 직함을 달고 등판하진 않았으나, 내부적으로는 이미 차기 지도자로 낙점하고 그에 걸맞은 우상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김주애의 길, 김정일의 '빌드업' vs 김정은의 '속전속결’
과거의 사례를 보면 김주애가 걸어갈 길이 대략 그려진다. 김정일 위원장은 20년에 걸쳐 권력을 차근차근 다진 '빌드업의 정석'이었다. 1964년 6월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북한은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한 이후, 1974년 2월 당 전원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의 유일한 후계자로 내부 결정되었으며,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Political Committee) 위원으로 선출된다. 이후 19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기까지 당·사상·군을 차례로 장악했다. 오죽 철저했으면 김일성 주석조차 아들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였다. 덕분에 김일성 사망 후 '고난의 행군'이라는 북한 최고의 체제 위기 속에서도 세습 체제는 유지될 수 있었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속전속결형'이었다. 2008년 김정일의 건강 이상이 발생하자 이듬해 서둘러 내정됐다. 군 경력도 없는 그에게 '청년대장'이라는 이미지를 입히고 선전가요 '발걸음'을 유포하는 등 급박한 우상화가 이어졌다. 사상적 기반을 다질 시간이 부족했던 탓에 할아버지 김일성을 '코스프레'하며 정통성을 보완해야 했고, 권좌에 오른 뒤에는 장성택 등 원로 세력을 숙청하며 유아독존의 위세를 과시해야만 했다.
13살 소녀와 '백두혈통'이라는 마법의 논리
이제 13살 김주애는 어떤 경로를 밟게 될까.
우선 공식 직함과 임무는 언제 받게 될까? 올 2월 노동당대회가 그 공식 무대가 될까? 북한 관찰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사회주의 노동법은 16세 미만 어린이의 노동을 금지하고 교육권을 강조한다. 과연 이 법을 피해 어떤 직함을 부여할지 지켜볼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 체제가 언제부터 사상보다 혈통을 우선했느냐는 것이다. 본래 공산주의는 사상이 핵심이어야 하건만, 김정은 집권 이후 '백두혈통'은 마치 왕조의 법통처럼 굳어졌다. 2013년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 원칙'에 백두혈통을 명문화한 것은 세습을 공고히 하기 위한 '편의적 논리'의 극치라 할 수 있다.
복잡해진 평양의 마음
김정일 체제 말기, 김정은이 후계자로 낙점된 이후, 평양에서는 점집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를 노동신문도 미신 풍속이 성행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북한 간부들의 마음이 복잡했던 거다. 빨리 김정은에게 줄 서야 할지, 아직은 이른지. 종잡을 수 없는 미래를 점집에 가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세습 독재 체제에서 줄서기는 3대의 부귀영화를 좌우한다. 그러니 권력 과도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되면 권력에 빌붙은 당, 정, 군 간부들의 속내는 복잡해질 것이다. 이것을 알면서도 김정은은 왜 후계자 내정 단계를 진행했을까?
김정은 자신이 급작스러운 권력 승계로 어려움을 겪었으니, 딸에게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권력을 물려주기 위한 심모원려(深謀遠慮)일 수 있다. 하지만 어린 딸이 갈 길은 먼데, 해가 지고 있다(일모도원, 日暮途遠)는 김정은의 불안감은 아닐까도 상상의 영역 속에서 궁금해진다.
북한 주민의 자유를 보장할 지도자는 없는가
북한 후계 구도를 향한 시선이 단순히 김주애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핵심은 ‘누가 백두혈통인가'가 아니라, '누가 북한 주민에게 자유와 안전을 보장할 실질적 역량을 갖췄는가'여야 한다. 이러한 가치 지향적 관점에서 후계 경로를 냉철히 분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끝으로 국정원의 발표를 보며 2020년의 '김여정 위임통치' 해프닝을 떠올려 본다. 위임통치라는 용어는 혹시 김정은에게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닌지 세포를 자극하는 발표였다. 국정원은 김여정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은 아니나 확실한 2인자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김여정이 대남 업무에 대해 일정 부분 재량권을 부여했다는 정도였는데, 이것을 위임통치라고 국정원에서 규정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김주애의 '후계자 내정 단계'라는 명쾌하지 않으면서도 상상을 자극하는 용어가 김여정 위임통치 해프닝 2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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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인배 전 국립통일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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