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홈런 11타점 맹타’ 문보경이라 쓰고 해결사라 읽는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6.03.09 22:53  수정 2026.03.09 22:53

WBC 1라운드 4경기서 2홈런 11타점 맹타

결정적 순간마다 타점 올리면서 2R행 견인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한 문보경. ⓒ 연합뉴스

실낱같던 희망이 현실이 됐다. 벼랑 끝에 몰렸던 한국 야구 대표팀이 ‘경우의 수’를 뚫고 기적 같은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기적의 중심에는 '해결사'로 떠오른 문보경(LG)의 신들린 타점 본능이 있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 1라운드 C조 최종전에서 호주를 7-2로 제압했다.


이로써 한국은 대만, 호주와 나란히 2승 2패를 기록, 대회 순위 결정 방식인 ‘아웃카운트당 실점률’에서 앞서며 조 2위로 8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2009년 준우승 이후 무려 17년 만에 맛보는 본선 토너먼트 진출이다.


경기 전 2라운드 진출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상황이었다. 반드시 호주를 5점 차 이상으로 이기면서 2실점 이하로 막아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다. 자칫 초반 득점이 나오지 않을 경우 심리적 압박감에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이번 1라운드 최고의 선수로 등극한 문보경이 첫 타석부터 우려를 불식시켰다.


2회초, 안현민의 안타로 만든 무사 1루 기회에서 타석에 들어선 문보경은 상대 선발 라클란 웰스의 슬라이더를 그대로 걷어 올려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지난 체코전 만루 홈런에 이은 대회 2호포. 홈을 밟은 문보경은 동료들과 손뼉을 맞추며 "할 수 있다"를 외쳤다. 침체 되었던 더그아웃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놓은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문보경의 화력은 식을 줄 몰랐다. 3회초 이정후의 적시타로 3-0으로 앞선 1사 2루 상황, 그는 다시 한 번 우중간을 가르는 통렬한 2루타로 이정후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5회초에도 2사 2루 찬스를 놓치지 않고 깔끔한 좌전 적시타를 추가하며 스코어를 5-0으로 만들었다. 8강 진출을 위한 '필요조건'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완성한 순간이었다.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한 문보경. ⓒ 연합뉴스

이날 5타수 3안타(1홈런) 4타점을 기록한 문보경은 팀 득점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단순히 한 경기 활약이 아니다. 문보경은 이번 1라운드 4경기에서만 무려 11타점을 쓸어 담았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2026 WBC 전체 타점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 기록이다. 메이저리그 '타격왕' 루이스 아라에스(베네수엘라·7타점)는 물론, 세계 최고의 스타 오타니 쇼헤이(일본·6타점),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도미니카공화국·6타점) 등 쟁쟁한 빅리거들을 따돌린 성적이다.


특히 문보경의 타점은 영양가 면에서도 최고였다. 체코전 기선을 제압하는 만루 홈런(5타점), 일본전 패색이 짙던 상황에서 터뜨린 추격의 2타점 2루타, 그리고 운명이 걸린 호주전에서의 4타점까지. 말 그대로 한국 야구의 명운이 걸린 순간마다 그의 방망이가 응답한 셈이다.


문보경은 이미 국제 대회용 선수로 이름을 떨친 바 있다.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클러치 능력을 증명했고, 2024 프리미어12를 거치며 대표팀의 핵심 자원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WBC에서 잠재력을 대폭발시키며 국가대표 해결사의 계보를 이어나갔다.


17년 만에 2라운드 진출 잔혹사를 끊어낸 한국 야구는 이제 결전의 땅 미국 마이애미로 향한다. 8강전 상대는 D조에서 나란히 2승을 기록 중인 도미니카공화국 또는 베네수엘라다. 두 팀 모두 메이저리거들로 채워진 강팀들이다.


전력상 열세인 것은 분명하지만, 문보경을 앞세운 타선이라면 충분히 기대를 품을 만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던 문보경의 약속은 도쿄돔의 기적을 만들었다. 이제 마이애미의 태양 아래서 또 한 번 신들린 타점쇼가 펼쳐질지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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