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국면서 ‘사회적가치 성장 모델’ 제시
성과 기반 인센티브로 사회문제 해결 유도
윤호중 “지역 기반 사회연대경제 확산 필요”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10일 사회적가치연구원 주최로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가치와 성장 포럼’에서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데일리안 백서원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한국 경제의 해법으로 사회문제 해결 비용을 줄이는 새로운 성장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적성과크레딧(SPC·Social Progress Credits)’이 대표적이다. 국내총생산(GDP) 확대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고 사회적 가치를 성장 구조 안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경제 모델을 다시 짜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10일 사회적가치연구원 주최로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가치와 성장 포럼’에서 “여태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제 모델 혹은 사회 모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며 “지금처럼 GDP 성장만을 성장으로 놓는 자체가 잘못돼 버렸다”고 밝혔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은 SK그룹이 설립한 재단법인으로 사회적 가치 측정과 보상 제도 연구를 수행해 왔다. 이번 포럼은 약 10년간의 SPC 실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문제 해결 성과에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이 국가 차원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 될 수 있는지 논의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GDP 성장 한계…사회문제비용 줄여야"
최 회장은 “지금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경제는 쉽지 않다”며 “GDP의 성장도 존재해야 하지만 반대편에 서 있는 사회문제 비용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기존 성장 경로가 한계에 직면했다고 짚었다. 한국이 고속 성장을 이뤄냈으나 지금은 수출 주도형 성장만으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저출생과 양극화, 내수 부진, 사회 갈등 등 누적된 구조적 문제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를 자본주의 체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장은 그가 오랜 기간 강조해 온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최 회장은 2009년 사회적 기업의 가능성에 주목한 뒤 SK 차원의 사회적기업 육성안과 사업단 출범을 이끌었고, 2013년 세계경제포럼 다보스포럼에서는 사회문제 해결 성과에 경제적 보상을 부여하는 SPC 개념을 처음 제안한 바 있다. 이후 2015년부터는 한국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사회성과인센티브 프로젝트를 시작해 이 가설을 검증해 왔다.
그는 “사회적 가치는 더 이상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사회문제가 너무 커지면 자본주의와 양립하기 어렵다”며 “정부 혼자 이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고, 더 많은 민간 주체들이 정부처럼 사회문제 해결에 참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대안으로 최 회장이 제시한 것이 SPC다. 기존 보조금 정책이 투입 중심이라면, SPC는 성과가 확인된 이후 보상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다르다.
최 회장은 “착함에만 기대서는 지금 사회의 너무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선함을 어떻게든 과학적인 형태로 바꿔서 더 많은 사람이 착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끌고 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SK가 지난 2015년부터 SPC 실험을 이어온 배경도 직접 설명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성과가 실제 보상으로 이어질지 검증하기 위한 것이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이 프로젝트에는 468개 사회적 기업이 참여했고 이들이 해결한 사회문제를 화폐 가치로 환산한 금액은 5364억원, 지급된 현금 인센티브는 769억원에 달한다.
최 회장은 “사회문제를 해결해 행복을 더 많이 창출하는 사람들이 보상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또 누가 얼마나 보상할 것인가가 우리의 핵심 질문이었다”며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그 측정된 만큼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10년간 실험해온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10일 사회적가치연구원 주최로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가치와 성장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데일리안 백서원 기자
10년간 SPC 실험…사회성과 측정·보상
다만 최 회장은 제도화 과정의 어려움도 인정했다. 사회적 가치 측정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둘러싼 논란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말은 좋지만 측정의 정확성, 객관성에 대한 도전이 가장 컸다”며 “사회적 가치 측정도 기업 회계가 발전해 온 것처럼 시간이 지나며 더 정교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회장은 앞으로 성장 전략의 관건으로 ‘참여자 확대’를 꼽았다.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로 연결되는 구조에 더 많은 기업과 기관, 개인이 들어와야 의미 있는 성장 전환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는 “사회적 경제에 참여하는 인구가 최소한 1000만명은 돼야 한다. 최소 경제활동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참여해야 가치가 포함된 새로운 GDP 성장이 가능해질 수 있다”면서 “사회적 가치를 포함하는 새로운 GDP 측정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했다. 환경을 덜 훼손한 성과에 경제적 보상을 주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환경보호크레딧(EPC·Environmental Protection Credit) 구상을 함께 소개했다.
최 회장은 “규제만으로는 기업들이 회피하거나 거짓말을 하게 된다”며 “환경을 덜 침해하고 가치를 만들어낸 주체에게 리워드를 주는 형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인공지능(AI) 활용 가능성도 언급했다. 사회문제 해결과 산업 성장, 생산성 제고를 동시에 노릴 수 있는 분야라는 취지다.
그는 “AI를 이용한 사회적 기업 형태들이 엄청나게 많이 출현하면 AI 산업을 키우고 사회적 가치도 만들며, GDP에도 도움이 되는 형태로 돌아갈 수 있다”며 “한 토끼만 잡는 방식이 아니라 두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도 이날 토론에서 성장의 질적 전환 필요성에 공감했다.
윤 장관은 “시장과 정부가 할 수 있는 영역 외에 새로운 영역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면서 “사회적 가치와 사회연대, 우리 사회가 아직 끌어내지 못한 힘까지 다 끌어내야 이 난제를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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