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경쟁 기준 '에너지 밀도→신뢰 밀도' 확장
AI 설계·열관리·가스 제어 결합한 '3P-제로' 안전 기술 공개
전기차 넘어 데이터센터·로봇 등 신수요 대응 전략 제시
박기수 SK온 미래기술원장(CTO)이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 더배터리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우리의 모든 생활이 이제 배터리와 굉장히 밀접한 생활을 하게 되는 상황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안전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박기수 SK온 미래기술원장(CTO)은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 부대행사 '더 배터리 컨퍼런스'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SK온은 배터리 기술 경쟁의 기준을 기존 '에너지 밀도'에서 소비자 신뢰를 반영한 '신뢰 밀도'로 확장하며 안전 중심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기차 캐즘 국면에서도 배터리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결국 소비자의 신뢰에서 나온다는 판단이다.
배터리 안전 전략과 기술 로드맵을 공개했다. 박 원장은 "에너지 밀도처럼 배터리의 신뢰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신뢰 밀도(Trust Density)'라는 용어를 만들었다"며 "결국 소비자의 마음속에 얼마나 깊은 신뢰를 주느냐가 배터리 사용량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현재 전기차 시장이 구조적 침체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 요인이 맞물린 '조정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전기차 초기 구매 비용 부담과 충전 인프라, 접근성 문제 등 수요 측 요인이 있고 공급 측면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생산 최적화 문제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며 "정체된 것처럼 보이지만 배터리 산업은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특히 배터리 수요는 전기차를 넘어 상용차, 선박, 데이터센터, 휴머노이드 로봇 등으로 확장되고 있어 안전성 확보가 산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SK온은 배터리 안전을 '예방(Prevent)·보호(Protect)·예측(Predict)' 세 단계로 관리하는 '3P-제로(3P Zero)'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예방' 단계에서는 셀 자체의 발화 가능성을 줄이는 소재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양극과 음극 소재 반응성을 낮추는 코팅 기술을 적용하고, 고온에서도 수축이 발생하지 않는 내열 분리막을 개발해 적용을 추진 중이다. 또한 난연성 전해액 등 화재 위험을 낮추는 소재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다만 박 원장은 배터리 화재를 완전히 '제로'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를 담고 있는 시스템에서 화재를 물리적으로 0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며 "디자인과 소재 기술을 통해 위험을 줄일 수는 있지만 이를 보완하는 다중 안전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호' 단계에서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을 고도화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SK온은 양산 라인과 운행 데이터에서 발생하는 안전 관련 정보를 BMS에 반영하고 있으며, 업계 최초로 사이버 보안 관리 시스템(CSMS) 레벨3 인증도 획득했다.
또 파우치 배터리의 약점으로 지적된 화염 확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물질을 개발, 팩에 특정 물질을 적용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가스 배출이 되도록 설계했다.
열 관리 기술도 강화하고 있다. 기존 바텀 쿨링 중심 구조에서 액침 냉각이나 대면적 냉각 방식 등 다양한 열 제어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파우치 셀을 금속 케이스에 넣는 구조도 연구 중이다.
각형 배터리 분야에서는 레이저로 원하는 위치에 가스 배출구를 설계할 수 있는 '레이저 벤팅' 기술을 개발해 이번 인터배터리 어워즈를 수상했다. 이 기술은 배터리 팩 설계의 자유도를 높이고 열과 가스를 제어된 방향으로 배출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 단계인 '예측' 전략의 핵심은 인공지능(AI) 기반 설계 시스템이다. SK온은 시험 데이터와 양산 데이터, 실제 운행 데이터를 통합한 'AI 디지털 트윈' 체계를 구축해 배터리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고 있다.
박 원장은 "과거에는 설계를 경험 많은 엔지니어가 엑셀 기반으로 진행하고 결과는 평가를 해야만 알 수 있었다"며 "AI 기반 설계를 적용하면 설계 단계에서 가격, 성능, 안전 수준까지 동시에 도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발한 사람이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제 철학이다. 내가 만든 것을 내가 쓰지 못한다면 누가 그 배터리를 신뢰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이런 신뢰 밀도를 높이기 위해 앞으로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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