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의 제네릭 약가 인하 추진
제약계 평균 영업이익률 5%가 현실
적자 구조 속 R&D 순환 기대하기 어려워
복제약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제약사가 불량 의약품을 파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약가 제도 개편 토론회 현장. 제약 업계를 대표해 참석한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의 항변이다. 정치권과 건보노조, 약사단체가 한 목소리로 ‘건보 재정 파탄의 주범’으로 제네릭을 지목하자 홀로 제약 업계 대변에 나선 것이다.
‘세상에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라는 속담처럼 보건복지부가 제네릭의 약가 인하를 추진하는 이유도 있긴 하다. 고령화 가속화와 고가 신약 증가로 약제비 비중이 커짐에 따라 제네릭의 약가를 오리지널 대비 40% 초반으로 낮춰 연간 1조원 안팎의 재정을 절감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복제약을 팔아 R&D 비용을 충당해온 국내 제약사들에게 미칠 ‘나비효과’는 그 뒤에 가려졌다.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제네릭에 의존하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다시 신약 개발이라는 험난한 고지에 쏟아붓는 한국형 제약 산업의 구조를 고려할 때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에는 ‘시장의 정서’가 빠져 있다는 게 제약사들의 하소연이다.
현재 국내 제약사들에게 복제약 수익은 단순히 ‘남겨먹는 돈’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신약 개발이라는 험난한 도전에 쏟아부을 유일한 ‘R&D 마중물’이기도 하다. 업계가 제시한 생존 마지노선인 40% 후반대를 넘어선 정부의 인하 계획은 국내 제약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 안팎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망각한 처사다.
제네릭이라는 자금줄을 끊으면서 글로벌 혁신 신약을 기대하는 것은, 거름도 주지 않고 열매만 맺으라는 비논리적인 요구와 다름없는 것이다.
물론, 국내에는 싸게 팔고 해외 시장에서 돈을 벌어 R&D 비용을 충당하면 되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논리에서 간과된 지점은 ‘글로벌 참조 약가’ 시스템이다.
현재 일부 신흥 국가들은 자국의 약가를 책정할 때 내부적으로 한국의 약가를 지표로 삼는다. 안방에서 약값이 깎이면 해외 시장에서도 제 값을 받기 힘들어지는 ‘연쇄 하향 구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해외 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우리 약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족쇄를 스스로 차게 되는 것과 다름 없다.
지금 제약 업계가 느끼는 또 다른 위기감은 ‘사회적 신뢰의 붕괴’다. 지난 약가 인하 토론회 현장에서 “범죄 집단이나 카르텔처럼 비쳐 답답하다”는 이 부회장의 토로는 규제보다 무서운 불신의 골을 의미한다. 제약·바이오 기업의 가치는 연구실의 성과에서 나오지만, 그 성과를 지탱하는 힘은 시장의 신뢰와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에서 완성된다.
단기적인 재정 수치에만 매몰돼 산업 전체를 ‘적폐’로 규정하고 숨통을 조인다면, 어떤 기업도 10년 뒤의 미래를 보고 투자를 지속할 수 없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지금 정부가 주도하는 약가 인하가 대한민국 미래 성장 동력의 공동묘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제약 산업은 단순히 대량생산 제품을 파는 업종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건강 주권’을 지키는 산업이다.
혁신 신약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선 양분을 빨아들일 제네릭이라는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혁신을 응원한다는 정부의 구호가 진심이라면, 일방적인 칼날을 거두고 산업의 미래를 위한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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