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 떼어팔기 안돼" 중복상장 금지에 SK·HD현대·한화 자금조달 '고심'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3.19 13:33  수정 2026.03.19 13:34

이재명 "송아지 밴 암소 샀는데..." IPO 관행에 레드카드

SK에코플랜트·HD현대로보 등 '대어급' 일제히 영향권

공모 대신 채권으로... 기업 조달 패러다임 변화 불가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국내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모·자회사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 자금을 확보하려던 대기업 그룹사들의 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상장 일정이 임박한 계열사들은 자금 조달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전날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상장 심사 기준을 강화해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관련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송아지 밴 암소를 샀는데 송아지 주인이 따로 있는 격”이라며 알짜 자회사를 떼어내 별도로 상장시키는 ‘쪼개기 상장’이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비정상적 관행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방침은 단순 분할 상장뿐 아니라,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인수·신설 자회사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한다. 앞으로 기업들은 일반 주주의 압도적 동의와 국내 상장의 필수성을 입증하는 '바늘구멍' 예외 조항을 통과해야만 증시 입성이 가능해진다.


가장 다급해진 곳은 SK에코플랜트다. 지난 2022년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 IPO)로 1조원을 조달하며 올해 7월까지 상장을 약속했지만 규제 강화로 예비심사 청구조차 불투명해졌다. 기한 내 상장이 무산될 경우 재무적 투자자(FI)의 지분을 되사주는 풋옵션 행사 등 막대한 재무적 부담이 현실화될 수 있어 현재 모회사와의 지분 매입 등 다양한 퇴로를 고심 중이다.


HD현대로보틱스는 몸값 최대 8조원이 거론되는 로봇 산업의 기대주지만 ‘물적분할 자회사의 상장’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규제의 표적이 됐다. 사측은 로봇 사업의 매출 비중이 지주사 내 0.3%에 불과해 가치 훼손이 미미하다는 논리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월 주관사 선정 이후 본격적인 절차 재개에는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화에너지 역시 당분간 상장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회사는 지난해 주관사를 선정하며 IPO 밑작업에 착수했고, 승계 과정에서의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불거지자 올해 초 “㈜한화와의 합병 계획은 없다”며 선을 긋기도 했다. 다만 FI들과 ‘6년 내 상장’ 조건을 설정한 만큼 단기 강행보다는 제도 정착 추이를 살피며 긴 호흡으로 시점을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IPO라는 가장 효율적인 창구가 막히면서 산업계의 자금 조달 방식은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기업들은 공모 자금 대신 자회사 지분을 담보로 한 교환사채(EB)나 주가수익스와프(PRS) 등 고비용 대체 수단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업계에선 자본 조달 비용이 상승하는 ‘울며 겨자 먹기’식 조달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미래 신산업 투자를 위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시점에 IPO라는 가장 효율적인 창구가 막힌 셈”이라며 “자본시장 정상화라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국가 첨단 산업의 투자 적기를 놓치지 않도록 세부적이고 유연한 예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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