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의 닻을 내리고 [조남대의 은퇴일기(95)]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3.24 14:01  수정 2026.03.24 14:01

40년 동안 명절이면 천오백 리를 오갔다. 해마다 두 차례, 자석에 이끌리는 쇳가루처럼 남쪽을 향해 내달렸던 그 길은 삶의 큰 물줄기였다. 엔진의 윙윙거림과 고속도로를 메운 소음은 명절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익숙한 서곡이었고, 정체된 차들 사이로 비치는 붉은 후미등은 조상을 향해 올리는 긴 촛불이었다. 다가오는 명절부터는 부모님이 모두 떠난 뒤 고향집을 찾을 이유도 예전만 못해 귀향의 닻을 내리기로 했다. 배는 멈췄으나 마음의 물결은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명절에 고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긴 차량 행렬ⓒ


돌이켜보면 그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성지순례' 같았다. 고단한 몸이건만 마음은 늘 한 방향을 향해 있었다. 80년대 후반, 손바닥만 한 프라이드 승용차에 동생네 식구와 외삼촌까지 아홉 명의 몸을 구겨 넣고 달리던 풍경은 지금 생각해도 기적에 가깝다. 작은 차 안은 팍팍한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으나,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정체가 길어지면 국도변에 차를 세우고 아내가 정성껏 싼 김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앞차의 꽁무니를 따라 샛길로 접어들었다가 이름 모를 남의 집 마당에 발을 들이고는 서로 멋쩍게 웃던 순간들조차 소풍 같은 설렘이었다. 어느 해는 추석날 근무를 하게 되어, 만삭인 아내가 세 살 된 아들을 데리고 홀로 귀성길에 올랐다. 서울역에 귀향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제시간에 승차장에 들어가지 못해 다음 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좌석이 없어 화장실 옆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보따리를 끌어안은 채 대구로 떠나보낸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먹먹하다.


조그만 승용차에 동생네 가족과 빼곡히 타고 가는 명절 풍경ⓒ


부모 세대의 명절은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올리고 집안의 질서를 익히던 날이었다. 제상 위에 오르는 제물의 수와 높이는 효심의 척도처럼 여겨졌고, 문중 어른들의 엄격한 법도는 집안의 뼈대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평소 서너 시간이면 닿을 거리를 열 시간이 넘도록 달려간 이유는 마당 끝까지 마중 나오시는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고통스러운 정체마저 자식이 부모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육체적인 헌신처럼 여겨졌다. 그 완고한 형식을 통과해야 비로소 ‘장남’으로서, ‘자식’으로서의 존재를 다 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고향을 방문했을 때 부모님이 반갑게 맞이하는 명절 모습ⓒ


영원할 것 같던 전통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뒤이어 찾아온 코로나의 긴 터널은 풍속을 멈추는 계기가 되었다.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가는 것이 미덕이 된 세월 동안, 우리는 형식 너머의 실리를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각자 성묘하고 쉬자"라는 여자들의 목소리를 앞세운 시대의 요청이었다. 이미 손주까지 본 자식들에게 고생스러운 귀성길을 강요하는 것은 아름다운 풍속이 아닌 멍에가 아니겠는가. 이번 설을 마지막으로 차례를 없애고 기일의 제사만 남기기로 한 결단 앞에,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법정 스님의 말처럼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아는 것은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아는 일”인지도 모른다.



명절에 음식 준비에서 벗어난 며느리의 여유로운 모습ⓒ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한 섭섭함은 시대의 요구로 마땅히 치러야 할 책임에 대한 비애일지도 모른다. 대구로 향하던 고속도로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한 집안의 기둥임을 증명하는 이정표와도 같았다. 긴 세월 동안 대장정을 묵묵히 함께한 아내의 얼굴에는 전에 없던 생기가 돈다. 명절은 아내에게 '음식과 노동'이라는 다른 이름의 형벌이었다. 홀가분 해하는 표정을 보며, 우리 세대가 겪는 ‘양쪽을 살펴야 하는 고단함’의 징검다리 역할을 맡은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부모의 완고함을 지키려 애쓰면서도, 자식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그 끈을 놓아주는 마지막 수문장인 셈이다.



명절에 화상으로 부모님과 통화하는 가족ⓒ


자녀들은 저마다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명절을 ‘가족이 함께 쉬는 휴일’쯤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전통을 의무로 짐 부리듯 떠넘길 수는 없다. 굳이 열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지 않아도 화상 통화로 안부를 묻고, 각자의 공간에서 부모를 떠올리며 마음을 전하는 일에 익숙하다. 이를 두고 전통이 사라진다고 섣불리 탄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지만 본질을 잃지 않듯, 전통 또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추어 변모한다. 전통은 지켜내야 할 오래된 풍경이 아니라, 각 세대의 삶 속에서 다시 해석되고 살아나는 문화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방식은 달라져도,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연결의 마음만은 여전히 남아 있으리라 믿는다.



명절에 조상을 기린 후 가족 간 오붓하게 음식을 나누는 풍경ⓒ


오늘날 제례의 형식은 가족 중심의 휴식으로, 의무라는 구속은 자발적인 실천으로 옮겨가고 있다. 배와 밤을 깎아 올리던 정성은 자식들의 평온한 일상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결을 바꾸었다. 다가오는 추석에는 40년 만에 고향에 가지 않는 명절을 보내며, 거실에 앉아 옛 추억을 회상하고 있을 것이다. 조상은 차례상 위 제수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화로운 시간과 자식들의 밝은 웃음 속에도 함께 깃들어 계시는 것이 아닐까. 조상과의 결속 모습이 달라졌어도 가족을 향한 마음만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세월을 건너 전통을 지탱하는 가장 깊은 힘인지도 모른다.


명절에 비워진 차례상 대신 가족 간 여유롭게 지내는 모습ⓒ


귀향의 닻을 내린다는 것은 정박이 아니라 새로운 항해를 위한 준비다. 과거의 길은 닫혔으나, 40년간 고속도로 위에서 이어온 마음과 효의 기록은 이제 일상 속 다른 길로 이어질 것이다. 비로소 맞이할 명절 아침에 비워진 차례상 대신 정다운 가족 얼굴과 여유롭게 생활하는 모습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그것이 조상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현대적이고 진심 어린 제례일지도 모른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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