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회 뒤 라면·식용유 인하…과자·빙과까지 확산
물가 안정 내세웠지만 업계엔 사실상 가격 인하 압박
환율·유가 부담 남았는데도 기업들 줄줄이 동참
서울 시내 대형마트. ⓒ뉴시
정부가 식품업계를 대상으로 한 ‘가격 인하 자율 동참 요청’이 사실상 가격 통제로 작동하고 있다.
중동 전쟁 등 원자재 가격 상승 요인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가격 인하 동참 요청에 업계가 줄줄이 일부 품목 가격 인하에 나서고 있어서다. ‘간담회 → 가격 인하 발표’의 흐름이 반복되면서 시장 자율성이 흔들리고 있다.
서울시내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되어 있다. ⓒ뉴시스
간담회 뒤 줄인하…라면·식용유 이어 과자·아이스크림까지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9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TF 유통구조 점검팀 3차 회의 이후 제과업체 1곳이 소비자 물가 부담 완화를 위해 가격 인하에 추가 동참했다.
이로써 제과·양산빵·빙과류 총 5개 업체가 가격을 인하했다. 제과 업체 3곳은 총 10종 품목을 평균 2.9~5.5% 낮췄다. 양산빵 2개 업체는 총 3종 가격을 평균 5.4~6.0% 내렸다. 빙과 2개 업체도 총 8개 품목 가격을 8.2~13.4% 축소했다.
제과·양산빵·빙과류 뿐만 아니라 식용유·라면 업계도 정부의 가격 인하 요청에 응한 바 있다.
농식품부는 앞서 4일 식용유 업계 간담회를 열었다. 5일에는 라면 업계와 간담회도 진행했다. 이틀 연속 가공식품 업계를 소집한 자리에서 정부는 원재료 가격 하락분의 소비자가격 반영 방안을 제안했다.
간담회 이후 라면 업계는 일부 제품 가격을 최소 4.6%에서 최대 14.6% 내리기로 했다. 식용유 업계 또한 평균 3~6% 가격을 낮췄다.
정부의 가공식품 가격 인하 요청은 올해 초 원재료 가격 하락 시 인하 폭을 제안한다는 목소리에서부터 시작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월 제분·제당업체들이 가격 인상 과정에서 가격과 시기를 사전에 공유하는 등 담합 행위를 한 사실을 적발했다. 이후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서 지난 2월 국제 밀·설탕 가격 하락에도 소비자가격 괴리가 좁혀지지 않는다고 비판을 제기했다.
이에 가공식품 물가 주무부처인 농식품부가 나서 식품업계에 물가 인하 요인이 있으면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식용유가 진열돼 있다. ⓒ뉴시스
원가 부담 여전한데 동참…업계는 사실상 울며 겨자먹기
이처럼 식품업계가 줄줄이 가격 인하에 동참했지만, 자율적인 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
식품기업은 정부 요청을 외면할 경우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정부 기조와 충돌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여기에 공정위 조사와 소비자단체의 가격 인하 요구가 겹친 상황이라 업계로선 규제 리스크와 여론 부담을 함께 의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업계들도 경영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중동 정세 불안이 이어지면서 국제 유가 변동성은 지속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1500원을 웃도는 등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원료 가격이 상승하고 유가 상승은 물류비와 냉동·냉장 설비, 포장재 비용까지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원재료 일부 가격이 하락했더라도 환율과 에너지 비용 상승이 이를 상쇄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가격 인하 여력이 제한적인 셈이다.
또 정부와 업계의 간담회 직후 가격 인하 발표가 이어졌다는 점도 정부 기조와 시장 환경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이에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설탕·밀가루 등 원재료 가격이 인하됐고, 인하 요인이 있다고 판단해 각 기업에 검토를 요청한 것”이라며 “정부가 가격 결정에 통제력을 동원하기는 어렵고, 실질적으로 압박으로 느꼈을 수 있겠지만 원가 인하 요인을 분석해달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들도 향후 경영 여건을 충분히 검토한 뒤, 국내 소비자들의 물가 부담을 선제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 결정한 것으로 이해한다”며 “정부도 중동 전쟁 등 상황을 살펴보며 식품 원재료 수급 관리, 할당관세 지원 등 업계 애로 해소를 위해 지속 모니터링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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