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봉법 업은 자동차 업계 노조…"원청 나와라"
정부 "전기차 연 80만대 팔아라"…숨통 조이는 목표
통제 수위 높아지는데 과제는 첩첩산중
내수·수출 확대에 통상까지…현지투자도 기업몫
경기도 평택항에 선적을 위해 대기하고 수출용 차량ⓒ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내 완성차 업계가 마주한 경영 환경은 한마디로 ‘삼중 압박’에 가깝다. 노동·환경·통상 전 영역에서 정책 강도가 동시에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과거보다 훨씬 좁아진 선택지 안에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문제는 규제의 방향이 산업 경쟁력 강화보다 ‘통제’에 무게가 실리면서, 기업의 자율적 판단 여지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더 깊어진 노사갈등, 더 높아진 전기차 허들
국내 자동차업계의 부담을 가장 직접적으로 가중시킨 건 노동 정책이다.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기업의 생산·경영 통제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된 것이다.
하청·특수고용까지 교섭 범위가 확대되며 안그래도 '강성노조'로 잘 알려져있던 완성차 업체들은 사실상 다층적 노사 교섭 구조를 떠안게 됐다. 노조의 잦은 교섭 요구와 쟁위행위가 지속될 경우, 생산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특히 수만개의 부품이 탑재되는 자동차 산업 특성상 완성차업체들은 교섭만 하다가 해를 넘길 지경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현대차만 하더라도 협력회사가 850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 자동차 업계 노조들은 원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현대모비스의 하청 노조는 상경 시위를 벌였고, 현대차 하청 노조는 이날만 3번째 교섭 요구서를 보내는 등 원청을 교섭 테이블에 앉히기 위한 절차를 강행했다.
전국금속노조 소속 현대모비스 자회사의 노동조합이 지난 10일 서울 현대모비스 본사 앞에서 램프사업부 매각과 관련해 원청 교섭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금속노조
전기차를 필두로한 급진적인 환경 정책은 어깨를 더욱 짓누르는 요소다. 2035년까지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53~61%' 수준으로 확정하면서 전기차 판매에 대한 압박이 더욱 강해졌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연간 80만대의 전기차를 팔아야하는데, 작년 기준 연간 판매량은 20만대를 겨우 넘긴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친환경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기업들은 팔리는 차와 팔아야 하는 차 사이에서 괴리를 떠안게 된 셈이다. 목표치가 지나치다는 우려를 줄곧 내비쳐온 업계의 의견도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자동차업계는 "그간 업계가 제기했던 급격한 전환으로 인한 문제점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채 목표가 설정돼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급격한 전환에 따른 부품업계와 고용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전환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병 주고, 약은 알아서…내수·수출에 외교까지 떠안은 기업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수 확대와 수출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의 교섭 요구와 쟁의 행위는 확대되고,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 판매 비중은 더욱 높여야하는 숙제 속에서 국내 경제마저 흔들림없이 유지해야하는 셈이다.
특히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자율주행, 로보틱스 등 높은 미래 투자 비용을 감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세대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방위 투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내연기관차 판매를 줄이라는 요구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24일(현지 시간)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미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AP=뉴시스
여기에 통상 리스크까지 겹치며 부담은 정점을 향하는 분위기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면서, 국내 기업들은 대규모 현지 투자를 사실상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 떠안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 직전 현대차그룹은 미국 백악관에서 210억 달러(약 31조원)의 현지 투자를 정의선 회장이 직접 발표했고, 이후 약 50억 달러를 더해 미국에만 총 260억 달러(약 38조원)의 투자계획을 확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완성차 업계는 ‘경영권 제약 속 성과 요구’라는 이중 구조에 직면해 있다"며 "노동 규제로 생산 유연성은 떨어지고, 환경 정책으로 제품 전략은 제한되며, 통상 리스크 대응은 기업의 몫으로 전가되는 구조다. 그럼에도 정부는 내수 확대, 수출 증가, 투자 확대라는 세 가지 요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정책 조합이 지속될 경우, 국내 자동차 산업의 체질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투자와 고용이 유지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성 악화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을 움직이게 하는 건 규제가 아니라 인센티브"라며 "지금처럼 통제 위주의 정책이 이어지면, 기업들은 결국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를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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