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에게 두려움은 숙명이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3.25 09:22  수정 2026.03.25 09:22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조선중앙TV화면

북한 김정은의 우리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거칠고 부정적인 언사로 채워지는 걸 보면 심리적 동요가 심해지는 것 같다.


2023년 중반부터 ‘코로나 폐쇄’ 체제가 완화되고 2014년 이후 대중국 교역이 상당부분 회복됐지만 정상화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게다가 유엔 대북제제도 계속되고 있다. 비록 많이 느슨해졌다고는 하나 족쇄임에는 틀림없다. 러시아로부터 파병과 무기 지원에 대한 막대한 대가를 받고 있겠지만 ‘민생의 개선’보다는 ‘무기 첨단화’, ‘군사력 강화’에 우선적으로 배분되기 십상이다.


북한 폭정 집단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한 공포감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지나친 무기개발 집착증 △핵무력 과시 △우리와 미국을 향한 위협 △과시형 도시 개발 △거대한 체제 선전 조형물 건설 △주민에 대한 통제 강화 △체제 비판자는 물론 체제 질서 위반자들에 대한 극단적 처형 △김정은 절대성 강조 등의 행태가 도를 더해가는 현상은 체제 자체의 위기감 표출이다. 늘 그래왔던 것일 수도 있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더해간다는 점이 주목된다.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


지금은 북한의 폐쇄성에도 금이 많이 갔다고 봐야 한다. 그 틈이 커지면 둑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통제의 강도를 높이고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다. 주민의 심리적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체제 측의 실력을 과장되게 자랑하면서 주민의 불안 심리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대외 협박용 언사도 반복한다.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하고 가장 명백한 언사와 행동으로 철저히 배척하고 무시하면서 다루어나가며 우리 공화국을 건드리는 한국의 행위에 대해서는 추호의 고려나 사소한 주춤도 없이 무자비하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김정은이 23일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한 말이다. 수없이 들어온 언사인데 갈수록 독해지고 있다. 지난 2023년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표방해 온 이래 우리에 대한 적개심을 무한 증폭시키겠다는 기세다.


무엇이 그에게 이런 극단적인 적대감을 거듭 표현하도록 만드는 것일지는 짐작하기 어렵잖다.


멀쩡한 것 같던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제가 한 순간에 와해됐다. 2800여만 명의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극심한 경제난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도 건재했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이었다. 미군 델타포스의 작전시간은 단지 3시간에 불과했다. 그는 저항도 못해보고 잡혀 미국으로 압송됐다.


인구 1억 7500만 명인 이란에서 신의 대리인으로 절대적 권력을 행사했던 알리 하메네이와 정부·군 실세들이 미국·이스라엘 공동작전(이른바 핀셋제거)의 표적이 돼 한 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독재자들의 설 땅이 너무 좁다는 것을 보여준 예다.


김정은으로서는 태연을 가장해도 공포감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다.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를 아무리 많이 배치해도 현대 군사과학은 그 허점을 비집고 들어 지휘부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실증적 사례로 보여준 것이다.


대한민국은 겁나지 않지만 미국, 특히 즉흥적·충동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트럼프의 변덕은 대단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통치 하에 있는 북한 2600만 주민일 터이고…


과거 루마니아 대통령이던 니콜라에 차우세스쿠의 최후를 보고 김정일이 긴장했었다는 당시 보도가 있었거니와 이는 독재자들의 일반적 반응이었을 것이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자국의 국민들을 학대하는 데는 천하무비(天下無比)의 괴력을 발휘했으나 민중의 분노 앞에서는 죽음 외의 선택지가 없었다.


공포감에 내지르는 김정은의 막말


김정은이 남다른 배포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부하들 모두가 초인적 강심장을 가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공포감이 스멀스멀 조직 내에 번지면 그건 와해의 징후다. 김정은 자신도 목숨처럼 아껴야 할 가족이 있다. 다른 권력자의 어이없는 최후를 보면, 아무리 자신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해도 공포감을 아주 떨쳐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긴 이제 북한은 군비라는 측면에서는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입장이 됐다. 핵무기를 만들었고, 대륙간 탄도탄 등 그걸 실어 나를 수 있는 운반체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수준으로 개발해뒀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젊은이들을 대량으로 보내 현대전을 직접 경험하게 했다. 과거 우리가 베트남전에 파병해서 실전 경험을 쌓고 무기를 현대화했던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니 김정은이 우리와 미국을 압박 못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공포감에서 또는 자신감에서 해대는 막말이겠는데 주 표적은 물론 북한 주민들이다. 지금까지는 철권통치(鐵拳統治)가 특별한 저항 없이 먹혀들어갔다고 해도 언제까지 그게 가능할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독재자가 정말로 겁을 내는 상대는 자기들이 탄압하고 있는 인민이다. 군주민수(君舟民水·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어 가라앉히기도 한다)의 이치를 독재자들이라고 모르겠는가. 다만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으니까 탄압의 강도를 높여 조직의 내구연한(耐久年限)을 늘리려는 안간힘이자 자기최면으로서의 허장성세라고 하겠다.


사실 김정은은 엉겁결에 참주(僭主)의 제위를 물려받은 처지다. 원래부터 그렇게 된 체제에서 어린 나이의 그가 민주적 개혁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깨닫고 보니 호랑이 등 위였다. 북한의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우러러 보지만 그 자신은 공포를 체감했을 것이다.


그러다 점점 권좌와 권세에 익숙해지면서 캠퍼(camphor)로 위기를 벗어나고, 모르핀(morphine)의 단위를 높여가며 체제를 유지하는 통치 방식에 익숙해 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식에게 다모클레스의 검(劍)이 목을 노리는 그 권좌를 물려주고 싶지는 않겠지만 그건 이미 그들의 숙명이 돼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물려줘야 한다면 더 강한 참주가 되게 가르치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고 여길 법하다.


지나친 친애표시는 오만 부추긴다


김정은의 ‘가장 적대적 국가’에서 그를 이웃해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처지다. 가끔 놀라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런 가운데서도 체통 지키며 사는 길은 그들의 저의에 놀아나지 말고 언사에 무심해 지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저쪽에서 도발해 오는 이상 군비경쟁은 피할 수 없다. 유사시에도 대비를 해야 한다.


다만 지나친 친애(親愛) 표현은 삼갈 일이다. 국내정치용이라고 해도 북한에 경도(傾倒)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북한 체제의 오만을 부추김으로써 그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밖에 안 된다. 그냥 무심히 대하면 된다. 저쪽이 지쳐야지 왜 우리가 지쳐야 하는가.

차히야 앨백도르지 몽골대통령(당시)이 2013년 김일성종합대학 연설에서 “인민은 자유로운 삶을 열망하며 이는 영원한 힘”이라면서 “어떤 폭정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고 역설한 바 있다. 구소련의 오랜 위성국으로서 겪었던 ‘자유 상실의 시대’를 북한 지식인들과 인류사회에 고발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반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9월 19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군중을 앞에 두고 이런 연설을 했다.


“나와 함께 이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문 전 대통령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 그 체제를 비롯한 모든 폭정은 반드시 끝나게 돼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북 겨레의 역사적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가운데 유사시 북한 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준비를 해가며 때를 기다리는 게 옳다. 괜히 우쭐대며 나서서 우리 내부의 가치관 도덕관 정의관을 어지럽히는 행위는 말아야 한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 안에서도 ‘모르핀 정치’라고 할 수 있는 언어나 조치들과는 과감하게 결별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첫째가는 도리라고 생각된다.


반대 정당 및 정치세력을 상대로 하는 독한 말, 과격한 조치는 지지자들에게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지만 지속적으로 단위를 높여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언어 파괴적 막말, 제도 및 전통 파괴적 과격 입법 행태가 임계점을 넘으면 정치해체의 결과를 낳고 만다. 그 피해는 정적들만의 몫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민 모두가 피해당사자가 된다. 행위자 지신들을 포함해서!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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