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이 한국 공급망 위기 고조
평시에도 위험 누적…충격 때 급격히 확대
매달 수입품 25%에서 신규 위험 발생
KIEP “위험 사라진 게 아니라 누적”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있는 유조선. ⓒ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의 공급망 문제가 ‘상시 위험’ 단계로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단순히 중동 위험(리스크)이나 미·중 무역 갈등 차원의 일시적 위협이 문제가 아니라는 진단이다. 공급망이 단순 물류 흐름을 넘어 국가 안보의 핵심 동인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공급망의 구조적 문제는 한국 경제를 장기적으로 발목 잡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최근 발표한 ‘보이지 않는 공급망 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공급망 위험은 더 이상 일시적 충격에 그치지 않는다.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를 기점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러·우 전쟁, 주요국 기술 통제 등 대형 악재가 잇따르면서 공급망 위험 기준선(Baseline) 자체가 상향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평균 안정성’의 착시…위험은 수면 아래서 축적
기존 공급망 논의는 주로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나 연간 무역 통계에 기대왔다. 보고서는 이러한 ‘평균 지표’가 실제 위험 구조를 과소평가하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평시에는 기업들이 재고 조정이나 가격 전가 등을 통해 위험을 흡수하기 때문에 통계상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런 특성으로 연간 통계, 평균 무역지표는 공급망 위험을 포착하기에 한계가 있다. 이면에 구조적 취약성이 계속해서 쌓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수출통제 품목군을 분석한 결과, 평시 평균 위험도는 오히려 비통제 품목보다 낮게 나타났다.
이는 해당 품목들이 구조적으로 관리되는 시장에 속해 있어 겉보기엔 안정적이다. 외부 충격이 가해지는 순간 잠재된 취약성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이벤트형 위험’의 특성을 갖는다.
결국 평균적 안정이 반드시 실제 안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부산 남구 신선대 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뉴시스
‘계단식’ 상승하는 위험…“과거로 복귀는 없다”
한국 공급망의 가장 심각한 특징은 위험의 구조적 고착이다.
조기경보시스템(EWS) 분석 결과 주요 외부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경보 품목 비중은 계단식으로 급등했다. 2018년 당시 15~20% 수준이던 경보 품목 비중은 일본 수출규제 이후 30%대로 늘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현재는 35~45% 구간에 안착한 상태다.
중요한 점은 충격이 잦아든 후에도 위험 지수가 과거의 저위험 구간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비용 형태로 누적되며 새로운 ‘상시 고위험’ 구조를 만들었다. 주식처럼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 계단식으로 상승하는 국면이다.
현재 한국은 수입 품목 3~4개 중 1개가 상시 경보 상태다. 공급망 위험은 이제 예외적 사건이 아닌 일반적 상태가 된 것이다. 공급망 정상화가 아니라 구조적 고위험 구간에 정착한 상태다.
보고서는 외부 충격 자체가 위기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위험의 크기와 지속성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구조적 취약성’이라고 진단했다.
같은 외부 변수가 발생해도 수입 안정성이 낮은 품목은 위험도가 더 급격히 치솟고 회복 속도도 더디다. 결국 보이지 않는 공급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현상 대응을 넘어, 수면 아래 축적되는 구조적 결함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보고서는 “공급망 위험은 구조적 취약성의 축적과 신규 위험 진입의 누적을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한다”며 “평균 지표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구조적 위험을 방치하면 다음 충격은 더 큰 위험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품목 적지만 ‘고의존 집중’…일부가 전체 산업 흔들어[문제는 공급망②]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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